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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란 무엇일까?

야곰야곰+책벌레 2022. 5. 18.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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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이 태어났을 때 나는 직접 이름을 지어주려고 여러 가지 성명학 책을 샀다. 그리고 이래저래 머리 굴려가며 지은 이름이 '서연'이었다. 서는 지혜로울 서, 연은 필칠 연으로 정했다. 그런데 나중에 찾아보니 '서'가 지혜롭다는 뜻보다는 용서하고 너그럽다는 뜻이 더 많이 사용되었다. 그때 받은 '용서'라는 느낌에 아이가 살아가며 손해 보며 살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스치기도 했다. 용서는 아주 좋은 느낌으로 때론 좋지 않은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용서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한 감정과 태도의 변화를 통한 의도적이며 자발적인 과정. 쌓여가는 공격적인 마음을 가지고 복수와 같은 부정적인 정서를 버리는 것.

  분노는 또 다른 분노를 낳지만 용서는 꼭 용서로 이어지지 않는 모습에 사람들은 용서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지 않을까 싶다. '배려가 쌓이면 권리인 줄 안다'는 우스갯소리도 그냥 나온 말은 아닐 테니까. 그런데 왜 성인들은 용서는 지혜로움이라고 얘기하는 걸까?

  하버드 의대 조지 베일런트 교수는 용서와 구분되어야 하는 몇 가지를 제시했다. 

1. 용서는 범죄에 대한 관용을 의미하지 않는다.
2. 용서는 망각을 의미하지 않는다.
3. 용서는 지나간 고통을 제거하지 않는다. 단지 미래의 고통을 제거한다.
4. 용서는 가해자를 너그러이 봐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용서는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라고 베일런트 교수는 얘기한다. 용서라는 것도 상대에 대한 이해나 공감이 아니라 보다 나은 미래로 향하고픈 나의 의지라는 것이다. 복수를 다짐함으로써 나타나는 갈등과 긴장은 때론 무고한 희생자를 만들기도 한다. 상대에게 피해를 받은 상황은 자신에게 대한 부정적 인식과 정서를 낳는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기도 한다. 용서는 그런 자신이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베일런트 교수의 말도 성인들의 말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평범한 나에게로 옮기면 '무시'라는 단어로 옮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상처의 크기가 크지 않다면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마음가짐으로 넘기거나 '너는 원래 그런 사람이구나' 정도로 선을 그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용서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선택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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