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은 작가의 집필 배경으로부터 시작된다. 이전 작품의 성과가 좋지 않았고 삶은 궁핍해져 갔다. 조금이라도 오래 버티기 위해서 모든 것이 저렴한 인도로 떠났다. 자신의 구상한 작품은 그렇게 만족스럽지 않았다. 하지만 인도 폰디체리에서 만난 한 사람의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어 이 작품을 완성하게 된다. 그리고 이 작품은 누적 판매 1200만 부를 돌파하며 맨 부커상 최대 베스트셀러가 된다.
로빈슨 크루소, 걸리버 여행기를 이을 만한 작품이라고 찬사를 받는 이 작품은 작가정신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주인공 피신 몰리토 파텔은 어린 시절 '피신'이라는 이름이 오줌을 싼다는 '피싱'과 비슷한 발음으로 들려 놀림을 받는다. 그래서 중등학교에 진학하여 등교 첫날부터 자신은 '파이 파텔'이며 파이는 3.14라고 강조하며 다닌다. 그는 자신이 붙인 새로운 이름을 통해서 자신이 새롭게 태어남을 느낀다. 세상의 본질보다는 이해되는 것이 중요한 것을 어릴 때부터 느낀 듯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파이'는 입을 통해서 전달되면서 '애플파이' 같은 의미가 되기도 한다.
첫 번째 챕터에서는 파이는 특별한 면을 보여준다. 기독교와 힌두교 그리고 이슬람교까지 모두 믿는다. 하나 같이 깊은 가르침이 있고 서로 연관되어 있음을 느낀다. 신을 믿음으로서 얻는 안정감을 그는 좋아했다. 하지만 어느 날 신부와 힌두 사제, 이슬람 지도자와 한 자리에서 맞닥뜨리게 된다. 그들은 모두 신은 하나이며 서로 공존할 수 없다며 주장한다. 그리고 파이에게 선택을 강요한다. 하지만 파이는 이 질문에 '모든 종교는 진실하다'는 간디의 말을 인용한다. 그리고 그는 종교보다는 '신'을 사랑하고 싶을 뿐이라고 말한다. 신은 '궁극적인 실체'이자 존재를 떠받치는 틀이건만, 마치 신의 힘이 약해서 자기가 도와야 한다는 것은 마음속으로 신을 옹호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자들일뿐이다.
두 번째 챕터는 태평양 한가운데 소년, 호랑이, 구명보트라는 키워드로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고뇌를 얘기한다. 인도는 언제나 불안한 정세로 자신의 재산을 지키려는 사람은 이민을 떠난다. 파이의 가족들도 캐나다로 떠날 준비를 하고 배에 오른다. 태평양 어디쯤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침몰한 선박에서 파이는 홀로 살아남는다. 가까스로 오르게 된 구명보트에는 호랑이와 오랑우탄 그리고 하이에나가 있었다. 동물원을 운영하던 파이네 가족이 데리고 가는 동물들 중 일부였다. 야생의 모습으로 돌아간 동물들은 약육강식의 순리대로 뱅골 호랑이만 남게 된다.
뱅골 호랑이와 200일이 넘는 날을 생존하는 파이의 모습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놓여 있다. 하지만 죽음은 곧 삶의 원동력이었고 적은 곧 생사를 함께 하는 동료였다. 시련 앞에 모든 것을 포기했을 때 갑자기 나타나는 삶에 대한 강렬한 의지가 생기기도 한다. 그것은 용기의 문제가 아니다. 놓아버리지 않는 것은 타고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뱅골 호랑이와의 관계는 적수가 된다. 이런 관계 설정은 살아야 된다는 끊임없는 되새김으로 이어진다. 절망은 생명력을 패배시킬 수 있다. 그것은 관대함이 없고 잔인하다. 그래서 호랑의 존재는 중요하다. 절망을 껴안은 채 홀로 남겨진다면 살 의지도 함께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파이는 호랑이를 길들이기로 한다.
배에서의 삶은 채식주의자였던 파이에게 육식을 강요했고 살생을 하게 만들었다. 손이 떨이고 구역질이 났지만 이내 아무렇지도 않게 하게 되었다. 어느 순간 자신이 동물처럼 먹어댄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 아파하기도 한다. 고상했던 한 인간은 시끄럽고 정신없이 먹어대는 동물과 다르지 않았다.
이 믿기 힘든 이야기 속에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순간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살아내려고 하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굶어 죽거나 아파 죽거나 호랑이에게 잡혀 먹히거나 상어에게 잡혀 먹힐 수 있는 온갖 곳에 죽음이 도사리고 있지만 절망이라는 것보다는 무섭지 않은 것임을 얘기한다. 살아내는 것이 신이 내린 가혹한 고난을 이겨내는 고귀한 존재일 수도 있지만 바닥까지 내려가는 동물과 다르지 않은 모습일 수 있다는 것 또한 보여준다.
마지막 챕터는 육지에서 치료를 받으며 생존자 인터뷰를 하는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선박 사고의 원인을 조사하러 온 일본인들은 파이의 말을 쉽게 믿지 못한다. 그에 대해 그는 단순한 것도 못 믿는다면, 왜 살아가고 있는지를 물으며 사랑도 믿기 힘드냐고 되묻는다. 그리고는 있을 법한 일이지만 더 잔인한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준 뒤 어느 얘기가 더 마음에 드냐고 묻는다. 세상은 있는 모습 그대로가 아닌 우리가 이해하는 대로 설명하는 것이고 그게 인생을 이야기로 만드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어차피 증명할 수 없는 이야기 아닌가.
작품은 보트 위의 사람 하나, 동물 하나로 올려 둠으로써 인간과 동물의 연대 혹은 대조를 보여준다. 가장 고귀한 순간부터 가장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후반부로 갈수록 더 치밀해지는 묘사로 인해 비위가 약하면 읽기 힘든 순간도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극한의 상황에 한 인간을 몰아넣음으로써 인간이 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과 행동을 하게 됨을 만나게 되고 또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문장에 멈출 수 없는 몰입감을 주는 작품이었고 덤덤하게 갈무리함으로 생각이 많아지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자신의 신념은 인생의 어느 정도의 고난이 올 때까지 지켜낼 수 있을까? 그런 강한 신념은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는 자신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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