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서평+독후감)/소설

아몬드 (손원평) - 창비

야곰야곰+책벌레 2022. 3. 23.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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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때 서점가를 휩쓸던 화제의 소설 '아몬드'를 구입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읽어볼 수 있었다. 영혼 없는 듯한 표지가 모든 것을 말해 주듯 주인공의 감각에는 조금의 문제가 있었다. 정상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고 그런 대중과 같지 않음에 있는 상태를 우리 사회는 얼마나 불안하게 바라보는지도 묘사하고 있다.

  책 중간에 나오는 '구할 수 없는 인간이란 없다. 구하려는 노력을 그만두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라는 가상의 인물 P.J. 놀란의 얘기가 모든 것을 얘기하듯 사람들은 대부분의 자신의 입장에서 상대를 이해하려고 든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을 때 어떤 기적이 생기는지 작가는 말하고 싶었을까. 주인공인 윤재의 삶도 불현듯 찾아온 곤의 삶도 끝까지 놓지 않고 보살피는 사람들의 마음이 전해져 원래의 궤도로 돌아온다.

  윤재는 감정을 느끼는 데 어려움이 있다. 어떻게 보면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로 불릴 수 있지만 그런 전문적인 용어에는 인간의 상태를 재단해버리는 기능이 있기 때문에 책 내에서는 그저 감정을 느끼는데 어려움이 있다라고만 표현한다. 그런 윤재를 세상에 적응시키기 위해 엄마는 상황에 따른 반응을 학습시킨다. 하지만 비극적인 사건으로 인해 엄마와 할머니는 그 역할을 더 이상해 해줄 수 없게 된다.

  인간의 두 면을 상징하듯 나타는 '곤'과 '도라'. 둘은 모두 방황하고는 있지만 '곤'은 어둠을 '도라'는 밝음을 상징한다. 집안 구석구석 '희로애락'의 한자를 붙여놓던 할머니와 달리 윤재의 일상에 그것들이 존재하게 된 것이다. 그들 사이의 교감은 감정조차도 사회적으로 편향된 지금의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다. 결핍의 존재로 등장하는 것은 주인공 윤재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편견 없이 볼 수 있고 이해하려 노력할 수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 낙인을 찍어버릴 법한 '곤'에게도 순수한 과정을 통해 관계를 열어나가게 된다. 감정에 대한 표현을 제대로 못하는 것은 주인공 윤재일까? 사회에 묻혀 살아가는 사람들의 얘기일까?

  여러 사람이 이루는 사회가 굴러가려면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주인공 윤재가 상황에 따라 취해야 하는 행동과 말을 배우는 것은 그런 것들의 하나이다. 하지만 그런 행위는 누구나 강요받고 있다. 사회라는 물결에 몸을 맡기기 위해서 우리는 감정을 강요당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집단적인 판단과 분노가 강해질수록 개인은 사회 속에 자신을 묻어 익명성에서 안정감을 얻게 된다. 타인의 감정에 무감각해지는 것은 사회적 질병이 되어버린 게 아닐까.

  이 작품은 결핍한 사람을 통해서 드러나는 결핍된 사회를 보여주는 거울 같은 작품이다. 주인공 윤재가 원래의 감정을 알아간다는 것으로 성장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보다 더 주요했던 메시지는 그가 성장함으로써 주위의 인물들마저도 자신의 궤도로 돌아옴을 보여줌으로써 사람에 대한 편견 없는 시선이 사회를 치유하고 그런 사회가 다시 사람들에게 공감의 능력을 부여해 줄 수 있다고 얘기하는 듯했다.

  각박해져 가는 사회. 이제는 사이코패스가 인류 진화의 방향이라 주장하는 학자도 생기는 지금의 시대에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노력이 얼마나 중요함을 생각해주게 하는 따뜻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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