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 중에 유시민 작가가 '인간이 비참함을 견디는 방법'이라는 코멘트와 함께 이재명 후보에게 권한 책이다. 제목답게 소설의 시작부터 끝까지는 딱 하루다. 수용소에서 눈을 뜨서 잠들기 전까지 만 하루의 이야기. 러시아판 '운수 좋은 날'과 같은 작품이다. 소비에트 연방, 스탈린 체제는 막무가내식으로 사람들을 수용소로 보냈다. 그곳은 세상 어디보다 비참한 곳이다. 그 속에서 이반 데니소비치라는 평범한 농노 수감자가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지내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작품은 수용소의 하루를 그저 평범한 일상처럼 그려내고 있다. 하루를 200페이지 정도에 녹여내니 얼마나 섬세한지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될 정도다. 수용소라는 정치적인 환경에서 저마다의 생존법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 약탈의 환경에 놓여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꽤 괜찮은 하루가 된다. 어려운 일을 피하거나 조금 더 많은 배식을 위한 업무량을 조절하기 위해 뇌물을 바친다. 배식을 한 그릇 더 받기 위해서 노력하고 평소보다 많은 건더기에 작은 행복을 얻기도 한다. 담배 한 모금 얻어 피우는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처음 수용소에 들어왔을 때에는 자유라는 것을 갈망했다. 하루하루를 살아냄으로써 비로소 석방을 맞이할 수 있는 거다. 왜 들어왔는지도 출소 후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 수용소의 삶보다 나을지 알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자유라는 것이 어떤 가치를 가지기엔 그 갈망이 사치가 되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반 데니소비치는 내일은 무엇을 할 것인가. 내년에는 또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계획을 세울 필요가 없어졌다. 모든 것은 간수가 정해주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것들이 마음은 훨씬 편했다.
이반 데니소비치는 104반에 속해 있다. 반이라는 것은 비참한 사람들의 공동체였다. 반장은 작은 공동체의 리더였고 책임과 권한을 한 몸에 가진 조금은 멋있는 사람이었다. '반'이라는 공동체 속에서 서로 다른 인간들이 섞여 노역을 하는 일은 인간다운 면모를 느끼면서도 사회의 부조리도 알 수 있다. 단지 추가 배식을 위해 노역을 하는 수감자들 그래도 그들 사이에는 뭔가 끈끈함이 있다. 수감자들의 노역의 대가를 가져가는 수용소. 이것은 당시 스탈린 체제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승자 독식의 자본주의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독재와 권력의 개가 된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면모를 그리고 있는 것 같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은 수감자와 다름없고 그들의 '비참함'을 견디는 방법은 하루를 잘 살아내는 것이다. 그 속에서도 이반 데니소비치는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다. 수용소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너무 잘 터득한 나머지 여러 사건에서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있다.
수용소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지만 너무 편히 읽힌다. 더 나아가서 그냥 고된 노역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같기도 하다. 저자는 아주 평범하게 풀어낸 글로 당시의 사회를 비판하고자 했다. 그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한 수감자의 모습 속에서 독재의 아래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도 얘기하는 것 같았다.
노역을 마치고 수용소로 돌아가기 전 늦어버린 복귀 시간에 뿔이 난 수감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느리게 걸어서 간수들의 쉼도 방해는 모습에서 비참함에 놓은 인간의 저항이란 이렇게도 할 수 있는 것이구나라고 느꼈다. 광복 이후로 급격하게 기울어진 기득권의 권력 아래에 놓여 있다는 것을 더 잘 느낄 수 있는 요즘이다. 자본은 모든 것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 버렸고, 부자는 훌륭하다는 얼토당토않은 가정이 성립하기도 한다.
비참함을 느끼는 하루. 시대는 또 그렇게 흘러가겠지만,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좋은 시대가 올 때까지 견디는 것 만이 정답인지는 알지 못하겠다. 다만 영창을 가지 않기 위해서 간수의 행동을 대하는 이반 데니소비치처럼 받아들이고 살아야 할지는 고민스러운 부분이다.
눈앞이 캄캄한 그런 날이 아니었고, 거의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날이었다.
비참함을 견뎌내는 것은 그 속에서 행복의 조각을 찾는 것일까. 단지 그것밖에 없을까. 너무 재밌고 너무 편하게 읽어버린 작품이 던지는 묵직한 질문에 대한 답을 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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