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서평+독후감)/정치 | 사회

가불 선진국 (조국) - 메디치미디어

야곰야곰+책벌레 2022. 3. 29. 21:30
반응형

  한국전쟁 이후 우리나라는 끊임없는 희생과 노력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 지원을 받던 나라가 지원을 하는 나라가 되었으며, 선진국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유일한 개발도상국이었다. 시설도 자원도 없던 나라. 나라를 위해서 간호사로 광부로 타국 멀리 떠난 분들이 계셨고 군부의 독재 아래 피를 흘리며 민주주의를 쟁취한 사람들도 있었다. 눈부신 발전의 밑거름이 되어 준 것들에 대한 희생을 잊은 채 앞만 보고 뛰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많다.

  우리의 발전은 희생에 의해서 이뤄져 왔다. 선진국의 문턱을 갓 넘은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상위 10%의 부자들은 하위 50%의 가난한 자들보다 무려 14배에 달하는 부를 축적하고 있다. 0.5% 정도밖에 되지 않는 대기업은 나라 전체의 50%가 넘는 이익을 가져가고 있다. 

2020년 산업재해 사망자는 882명이다. 현대 아이파크가 붕괴되었고 현대 제철소 용광로에 사람이 빠지는 일이 연이어 일어났다. 여수 화학단지에서는 폭발 사고가 생겼다. 10대에서 30대의 사망 원인의 압도적인 1위는 자살률이다. 특히 20대 여성들의 자살률은 급등했다. 그럼에도 중대재해 법령이 기업의 활동을 위축시킨다는 얘기를 당당하게 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복지를 늘리려면 악을 쓰며 반대한다. 반대하는 사람들 중에 약자가 많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도움을 받지 않겠다는 자존심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까지 약자의 희생을 담보로 발전을 얘기해야 할까? 주 52시간 근무가 최저임금제가 경제에 망조를 들게 만들 만큼 위험한 것인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은행이 매년 발표하는 '기업환경평가 순위'에서 늘 4 ~5 위를 하고 있다. 이미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만큼 친 기업적인 나라이다. 예전에 쉽게 쉽게 돈을 벌던 때의 문화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기업 하기 어려운 것이다. 약자를 쥐여 짜면 쉽게 이익을 늘릴 수 있지만 기업 경영을 최적화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이제 마른걸레 짜듯 하는 경영은 그만두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주 52시간으로 죽겠다는 소리를 내고 있을 때에도 독일의 보쉬는 주 28시간을 시도하고 있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4.5일 근무를 시도하고 있다. 오래 앉아 있다고 성과가 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시간이 필요한 업무에 대해서는 근무시간 저축 은행 같은 개념을 도입해도 좋을 것 같다. 수명이 길어지고 있다. 평생직장을 제공해 주는 것도 아니다. 충분한 휴식은 근무 효율을 올릴 수도 있고 새로운 인생을 열어가는 준비의 시간을 제공해 줄 수도 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로 우리나라의 자유권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정도다. 대통령에게 욕을 해도 잡혀가지 않는다. 언론 자유 지수는 아시아권에서는 2등이다. 하지만 약자의 희생 위에 올려진 거대한 부는 약자들의 사회권을 뺏어갔다. 코로나로 인해서 갑자기 늘어난 통화량에 부동산이며 주식이며 모든 것이 급등했다. 선진국 대비 잘 방어했다고 얘기해도 가지지 못한 자의 분노를 식힐 수는 없었다. 1948년에 만들어진 헌법 18조 '이익 균점권'을 지금 들먹이면 좌빨 소리를 들으니 우리의 사회권은 1948년보다 더 박탈된 상태인 것 같다.

  오늘날 살아온 이래 가장 심한 갈등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정치권들은 대놓고 갈등을 조장한다. 공부하지 않으면 기득권 언론에 놀아나기 딱 좋다. 내 주위에 사람들이 모두 같은 말을 하고 있다면 의심하라. 정확한 데이터와 여러 방면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 

  지난해 독일 잡지 <투리 투 에디션>으로부터 한국은 2021년의 승자들에 뽑혔다. <블룸버그>로부터는 코로나19 방역 MVP로 뽑혔다. 코로나19로 세계 경제가 휘청일 때도 우리나라는 세계 4등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찬란한 업적을 견딜 수 없을 만큼 약자의 상처는 깊어졌다. 약자에게 가불 했던 '사회권'을 이제는 돌려줘야 할 때이다. 미국의 부자들은 자신보고 기부하길 바라지 말라고 한다. 적극적인 법 개정으로 정당하게 받아가라고 얘기하며 누진세 법을 스스로 얘기하기도 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 있다. 

  헤겔은 '의무만 있고 권리 주장이 없는 사람은 노예다'라고 했다. 아무리 자유권이 주어진다 한들 사회권이 보장되지 않아 먹고살기 바빠 권리를 주장할 여유가 없다면 그것이 어떻게 선진국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워크홀릭에 빠지면 일을 손에서 놓으면 굉장히 불안하다. 우리나라는 지금 나라 전체가 워크홀릭이 아닐까 싶다. 잠깐만 숨을 고르고 휴가를 떠나 병들었던 몸을 회복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는 시기가 아닐까 한다.

  튼튼한 몸과 마음을 가진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 조금 다른 마음가짐과 여유를 가져보자.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