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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어떻게 죽을 것인가 (아툴 가완디) - 부키

야곰야곰+책벌레 2022. 3. 5.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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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도서 이후로 좋은 죽음에 대한 책들이 제법 출판되고 있는 것 같다. 좋은 죽음이란 무엇일까? 대부분의 책들은 마음가짐이라는 철학적 접근을 많이 한다. 내려놓음을 실천하는 것부터 나이 듦을 인정하는 것까지 다양하다. 모든 생물은 태어나면 반드시 자연으로 되돌아간다. 그린 순리 속에서 두렵기만 한 죽음이라는 것을 마주할 용기를 가져 보는 것은 중요하다.

  죽음을 이르는 사람에게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 사회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얘기하는 이 책은 부키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보았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질문은 많은 사람들에게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마음가짐만으로 좋은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 철학적인 질문에 대한 사회의 대답이 필요하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신체의 여러 부분의 기능이 떨어진다. 자연스레 돌봄이 필요해진다. 의학이 발전이 되기 전에 인간들은 죽음에 대해 대항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큰 공동체가 있었다. 어른들은 죽을 때까지 존재에 대한 예우를 받았고 공동체 속에서 자연스럽게 눈을 감았다.

  최근에는 어떨까? 의학의 발전은 병은 도전해야 하는 과제가 되었다. 많은 의사들은 병을 정복해야 하는 대상이 되었다. 많은 노인들에게 생기는 병들을 제거하려고만 하지 환자의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마주하는 의사를 그렇게 많지 않다. 요양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생명의 연장에만 신경을 쓴다. 똑같은 방에 똑같은 대우 엄격한 규칙들이 그렇다. 어쩌면 어린이집의 아이들보다 더 독립적이지 못한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생명 연장의 노력은 살아있는 사람이 죄의식에서 벗어나고자 함일 지도 모른다.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에게는 생명을 연장하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들이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이것은 병들고 노쇠한 사람들을 돌보는 데서 가장 잔인하게 실패한 부분이다. 오래 산다는 것보다 더 우선순위에 있는 욕구가 있다는 것을 아무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써 내려갈 기회를 박탈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철장 속의 동물처럼 안전하기만 아무 의미도 없는 삶 속으로 그들을 내 몰고 있는 게 아닐까.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속에서 우리는 몇 가지를 알 수 있다. 생명의 덧없음과 씨름해야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관점 사이에는 얼마나 깊은 틈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언젠가는 죽고 말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관점에서는 우선순위가 바뀐다. 매슬로우의 욕구의 피라미드를 빌리자면 20대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피라미드의 꼭대기인 자아실현의 욕구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작은 행복으로 우선순위가 바뀐다. 행복은 그 자체를 추구한다.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다던지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는 것도 그것이 될 수 있다. 내일 죽는다고 해도 참 괜찮은 인생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의학은 이런 눈높이를 맞출 수 없다. 노인병과 성인 1차 진료 분야의 수입은 의학계에서 가장 낮다. 노인병 전문의가 턱없이 부족할 뿐 아니라 유입되는 전문의보다 은퇴하는 전문의가 더 많을 지경이다. 젊은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지 못해 출산율이 줄어들고 있다며 많은 관심과 재정적 투자를 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현재 사회로 유입되는 인구보다 은퇴하는 인구가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일본은 노인 문제에 대해서 꽤 진지하게 마주하고 있지만 <노인 지옥>라고 불릴 만큼 어려움을 겪고 있다. 죽음을 마주하고 있는 사람들의 행복에 대해서 고민해야 할 시기가 아닐까 싶다.

  이 책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철학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마주해야 하는 그들의 가치. 죽는 날까지 인간다움을 지원해줄 시스템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노인 문제에 대해 조금은 다른 시각을 열어주는 훌륭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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