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서평+독후감)/인문 | 철학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라인홀드 니버) - 문예출판사

야곰야곰+책벌레 2022. 3. 26. 23:47
반응형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개인적으로 아는 것과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다. 사람은 환경과 역할에 대한 페르소나가 있다지만 가끔은 이해를 벗어나는 행동을 보면 이해가 가지 않기도 한다. 개인의 도덕성은 사회적으로 확장이 불가능한 것일까?

  개인적으로는 도덕적인 인간이 집단에 속하면 집단적 이기주의자로 변모한다는 라인홀드 니버의 주장은 이성으로 역사를 이끌 수 있다고 믿었는 지식인들의 믿음을 뿌리부터 흔들어 놓았다. 그만큼 깊이가 있는 책이면서 어려운 책이었다. 첫 번째 독서라 눈으로 탐독을 하였지만 10%라도 이해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정리해가며 읽으며 사색해야 할 책임이 틀림없다.

  사회를 중심에 놓고 보면, 최고의 도덕적 이상은 정의다. 그리고 개인을 중심에 놓고 보면 최고의 도덕적 이상은 이타성이다. 사회는 여러 면에서 어쩔 수 없이 도덕성이 높은 사람들로부터 전혀 도덕적 승인을 얻어낼 수 없는 방법을 사용하게 될지라도 종국적으로 정의를 추구해야 한다. 그리고 개인 자신보다 뛰어난 것을 보고서 자신을 잃기도 찾기도 하면서 자신의 삶을 실현해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p363)

  집단에서는 불가피하게도 집단의 이익이 불가피하게 지배적인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이 속에서 개인의 가장 이타적인 모습은 집단의 행위에 도전하는 것이 된다. 즉 개인의 자기희생으로 집단의 도덕에 반대하는 것이 된다. 집단의 사회적 행위는 개인적인 윤리로는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정치의 영역들을 정당화해준다. 오늘날의 교육가들은 합리주의자처럼 이성의 기능을 지나치게 신뢰한다. 하지만 사실 역사 세계 자체는 이성적이지 않은 세력들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 따라서 집단들 간의 관계는 항상 윤리적이기보다는 지극히 정치적이다. 

  집단의 가장 대표적인 예인 국가에 대해 얘기해 보자. 개인의 정신이 국가의 의지에 영향을 미치기란 사실 쉽지 않다. 그 이유는 국가의 의지를 대변하는 정부의 의지는 일반 민중의 맹목적 정서와 경제적 지배계급의 교묘한 이기심 추구에 의해 좌우된다. 국가는 합리적인 정신과 지성보다는 폭력과 감정에 의해 유지되는 결사체라 할 수 있다. 국가의 태도는 윤리적 성격을 갖기 어렵다는 것도 당연한 사실이다.

  개인의 애국심에도 윤리적 역설이 내재되어 있다. 애국심은 개인의 희생적인 이타심을 국가의 이기심으로 전환해버린다. 국가에 대한 충성심은 어떻게 보면 고차적인 형태의 이타주의임은 분명하다. 따라서 국가에 대한 충성심은 여타 모든 이타적 충동의 원천과 동시에 국가에 대한 개인의 비판적 태도를 완전히 말살해 버리는 열정의 형태로 드러나는 일이 자주 있다. 개인의 비 이기성은 국가의 이기성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타적 열정을 민족주의, 심하게는 국수주의로 바꾸기는 쉬워도 인류 전체를 향한 열정으로 바꾸기는 정말로 어렵다. 왜냐하면 인류 공동체에 대한 충성심이라는 것은 너무 막연하기 대문이다. (p160)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다름 아닌 기존의 사회 체제나 제도에 의해 가장 큰 혜택을 입고 있는 권력 있는 지배 집단의 이해관계이다. 일반 사회의 지적 능력이 사회의 비합리적인 부정과 불의를 일소할 만큼 높은 수준에까지 고양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분명 기분 나쁜 일은 아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지구 상에 이런 사회나 공동체는 존재한 적도 없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없다. (p309) 사회의 관성이란 워낙 견고한 것이어서, 관념적으로나마 그것을 이겨낼 수 있으리란 확신 없이는 그 힘을 견뎌내기 어려울 것이다. (p319)

  이타심과 이기심 사이의 최고의 가치는 아마 '중용'일 것이다. 그 둘은 다르지 않으며 갈등과 분노는 어쩌면 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집단적 행동을 위해서는 지식이 필요하고 정치적 기술이 필요하다. 정치적 귀족이나 경제적 부르주아 아래 착취당하던 사람들은 이겨낼 수 없었다. 

  특권 계급의 집단적 이기심으로부터 발생하는 사회적 부정의는 이성적으로 해결될 수 없다. 사회집단의 악을 견제하기 위해 폭력이나 강제력을 사용할 경우엔 이에 대해 다른 폭력이 나타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또한 혁명의 집단의 폭력은 바로 드러나지만 특권 계급의 폭력은 공권력이나 경제력으로 발휘되기 때문에 눈에 드러나지 않는다. 불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개인의 도덕과 사회-정치적 정의가 양립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에 대한 해답이 비폭력, 무저항 운동일지도 모르겠다. 

  공동체 속의 개인들의 갈등도 중요하지만 결국 공동체 간의 갈등을 해결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공동체의 갈등은 더 큰 공동체를 만듦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면도 있지만 갈등과 분노는 제거할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또한 분노는 불의에 대한 감정의 이기적인 측면이기 때문에 분노가 전혀 없는 상태는 사회적 지성이나 도덕적 활력이 없는 상태이기도 하기 때문에 우리가 감수해야 하는 요소다. 분노에서 이기심을 빼는 일이 더 중요할 것이다.

  사실 굉장히 어려운 책이며 광범위한 철학적 지식이 필요하기도 하다. 사회를 움직이는 원천 그 속에 존재하는 도덕과 윤리에 대해 여러 방면으로 얘기하며 사회가 정의를 구현하려고 했던 방법에 대해서 얘기한다. 오늘날의 사회는 이 책이 나온 1932년에 비하면 더 심한 비도덕적인 사회다. 개인의 도덕성이 사회에 그대로 투영될 수 있는 방법은 여전히 없는 것일까. 서로에 날을 세우고 있는 2022년에 1932년의 통찰력의 향기나마 맡을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다.

  아마 앞으로 몇 번은 더 만날 책이 아닌가 싶다. 더 잘 이해하고 싶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