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서평+독후감)/인문 | 철학

(서평) 점검 (정민) - 김영사

야곰야곰+책벌레 2022. 1. 3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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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만 보며 뛰고 뒤쳐지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부단히 그리고 허겁지겁 살아가고 있다. 무엇이 중요한지 잊은 채 살아가진 않는지 세상과 마음을 살필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 책은 옛글을 뒤져 오늘의 문제에 비춰 본다. 기술의 수준은 비교할 바가 아니겠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이치는 변하지 않았다. 

  400개의 옛글로 오늘을 성찰해 보는 시간을 가지는 이 책은 김영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400개의 옛글은 그냥 간략하게 ㄱ, ㄴ, ㄷ, ㄹ 순으로 나열되어 있다. 이 책은 기존에 출간한 <일침>, <조심>, <석복>, <습정> 그리고 <옛사람이 건넨 네 글자>에 수록된 글 들을 가려 엮은 통합본이다. 그렇기 때문에 1000페이지에 이른다.

  옛 선인들의 깨달음을 엮어 놓으니 좋은 말씀이 많다. 나라를 다스리는 것, 회사를 운영하는 것 그리고 관계를 대하는 것에 대한 좋은 깨우침이 있었다. 그리고 공부, 독서에 대한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드는 것은 심입천출(深入淺出, 세게 공부해서 쉽게 풀어낸다.)이다. 지난해 나는 빠르게 둘러보는 것에 치중하였다. 두고 볼 책을 골라내는 많은 시간을 들였다. 올해도 여전히 그 작업을 하겠지만 올해는 깊은 독서도 해야겠다. 심장불로(深藏不露, 깊이 감춰 드러내지 않는다)의 몸가짐도 생각해볼 만하다. 고수들은 한 번에 자기 수를 다 보여주지 않는다. 깊이 감춰 좀체 드러내는 법이 없다. 하수들이나 얄팍한 재주를 믿고 찧고 까분다. 잠깐 두드러져도 이내 흔적도 없다. 조금 더 깊이 공부하고 드러냄에 더 많은 고민을 하고 상대의 의견도 깊이 생각해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2022년에는 생사사생(生事事省, 일 만들기와 일 줄이기) 해야겠다. 정신없이 바쁠 때도 한결같아야 한다. 홍석주는 일과는 하나라도 빠뜨리면 안 된다고 했다. 사정이 있다고 거르면 일이 없을 때도 게을러진다고 말했다. 아주 바쁜 중에도 한 글자를 읽을 만한 틈이 생기면 한 글자라도 읽는 것이 옳다고 했다. 계획한 일을 할 수 없다고 자기 합리화하는 것이 아니라 글자 하나를 읽듯 끊어짐 없이 하도록 노력해야겠다.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각곡유목(刻鵠類鶩, 좋은 것을 배우면 실패해도 남는다)을 유의해야겠다. 좋은 것을 본뜨면 실패해도 얻는 것이 있지만 폼나고 멋있다고 잘못 흉내 내면 그것으로 몸을 망치게 된다. 열심히 하는 것 이전에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고 어떻게 배우느냐다. 톨스토이의 <인생독본> 첫 장에도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좋은 책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 나온다.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 알려면 우선 많이 읽어봐야 하니까라고 여전히 자기 합리화 중이지만 말이다.

  고생 뒤에 낙이 온다는 말이 있듯, 감취비농(甘脆肥農, 달고 무르고 기름지고 진한 맛) 이란 말이 있다. 우리의 도는 괴로운 뒤에 즐겁고, 중생은 즐거운 후에 괴롭다는 송대 마단림의 말과 같다. 달고 무르고 기름지고 맛이 진한 음식은 이름하여 창자를 썩게 만드는 약이라 한다. 감취비농을 취하는 행위는 파멸을 향해 돌진하는 것과 같다. 이 말은 능내구전(能耐久全, 더뎌야 오래간다)이라는 말과도 비슷하지 않을까? 공부함에 있어 가장 두려운 것은 오래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오래 견딜 수 없다면 아주 작은 일조차 해낼 수 없다는 이항로의 말은 나에게 다시금 각오를 다지게 만든다.

  너무 좋은 내용이 많아서 옆에 두고 계속해서 봐야 할 책이다. 진정 다독을 위한 도서다. 400개의 문장 중 허투루 볼 문장은 없다. 하나 같이 통찰을 주는 글들이다. 읽다 보면 지금 회사의 경영자들의 잘못된 점들이 보이고 정치인들의 허물이 보이기도 한다. 무언가를 다스리는 일이 수 백 년이 지났다고 무엇이 달라졌을까. 왕정 정치의 시대였지만 백성을 헤아리지 못하고 신하를 능히 다스리지 못하면 파멸로 이어짐은 다르지 않았다.

  올해도 계속해서 글을 쓸 예정이다. 많이 적는 것이 나에게는 하나의 연습이다. 하지만 인묵수렴(忍默收斂, 말의 품위와 격)의 자세를 잊지 않아야겠다. 말이란 정말 통쾌한 뜻에 이르렀을 때 문득 끊어 능히 참아 침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청나라 부산의 말을 잘 기억해 두려 한다. 그리고 해현갱장(解弦更張, 거문고 줄을 풀어 팽팽하게 다시 맨다) 하여 초심의 긴장을 유지하며 한 해 잘 살아내어야겠다.

  한 해를 시작한 지금 이 책을 만난 것은 정말 좋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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