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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 (제니 오델) - 필로우

야곰야곰+책벌레 2021. 12. 21.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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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만 보면 요즘 유행하는 번 아웃에서 벗어나 자신을 가다듬는 힐링 도서라고 오해하기 쉽다. 그렇다고 맹렬히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는 자기 계발서도 아니다. 저자는 이 책을 에세이처럼 읽어달라고 했지만 에세이보다는 인문학에 가까웠고 철학적이었고 사회 문제를 다룬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행동을 멈추고 스스로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 책은 필로우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현대에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종용되는 것은 아마 <시간관리법>이 아닐까 싶다. 스케쥴링에 대해서 과하다고 싶을 정도로 압박을 받는다. 노력하지 않는 삶에 대한 죄의식으로 가득한 사회가 만들어지고 있다. 소위 힐링이라고 일컬어지는 것들 또한 더 빡빡한 삶을 위한 호흡을 가다듬는 시간을 얘기한다.

  이 책은 도입부부터 <공백 없는 삶>은 현대 사회의 필수 요소 같지만 그것이 삶을 진부하고 기운 없게 만드는지를 말한다. 매일 쓰는 일기도 큰일이 생기면 며칠을 비워 두듯 삶의 공백은 스스로에게도 사색하는 시간을 가져다 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자연에 동화되는 삶을 살아보자는 것이다.

  장자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나무꾼은 수 백 년 된 고목을 쓸데없는 나무라고 하며 지나치지만 나무의 입장에서는 우스운 상황이다. 인간의 입장에서 생산성이라는 잣대를 여기저기에 대보며 판단한다. 하지만 지구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이 하는 생산이라는 것이 1%는 될지 미지수다. 적자생존의 입장에서 인간의 행동을 마냥 비난만 할 수는 없을지 모르겠지만 정말 그것이 인간이 살아남기 위한 행동인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최근에 이르러서는 <관심 경제>로 수익을 올리는 기업이 생겼다. 페이스북(메타),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으로 대표되는 SNS들은 사람의 시간을 묶어 둔다. 세상을 하나로 이어주는 허울 좋은 얘기를 하지만 인간을 네트워크에서 단절되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다. 한번 내보인 호기심은 데이터로 저장되고 더 자극적인 내용이 눈앞에 나타난다. 개인은 그렇게 점점 더 획일화되어 간다.

  이와 마찬가지로 최근에 강조하는 <퍼스널 브랜딩>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자신의 강점을 더욱 날카롭게 하기 위한 퍼스널 브랜딩은 개인의 다원성을 잃어버리게 만들 수 있다. 인간의 뇌는 수많은 정보 중에서 자신이 관심 있어하는 것을 필터링하는 능력을 가졌다. 그런 면에서 자신의 경험은 자신의 관심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퍼스널 브랜딩은 경험의 폭을 줄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우리는 가끔 자신의 공간에서 낯섦을 느낄 때가 있다. 그것은 어떤 계기로 나의 관심사가 조금 틀어졌다는 얘기다. 평소에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은 것들을 자각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과거 인류가 농경 생활을 시작했던 시절의 인간보다 생존에 취약하며 직관에 약한 것도 아마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지루함이 필요하다. 명상과 템플스테이 같은 것은 무료함을 통해 자신의 감각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행위가 될 것 같다.

  인간은 기술이 발전하면서 생태계의 다원성을 해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 스스로의 다원성도 잃어가고 있다. 세계화는 각 민족의 고유문화를 말살하고 있다. 최근 BTS와 한국 드라마가 세계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데 기쁜 일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문화의 획일화라고 볼 수 있다. <퍼스널 브랜딩>은 개인의 획일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요한 인재가 되는 동시에 마케팅 타깃이 될 수 있는 좋은 표본인 것이다.

  다원성을 잃어간다는 것은 멸종으로 가는 길이다. 생태계의 멸종은 가장 많은 분포를 보인 생물이 겪었던 역사다. 6번째 멸종의 대상은 인간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에 대응할 다원성도 잃어가고 있다. 지금 당장 위험이 닥친다면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상대는 물리적으로 엮인 공동체다. 디지털 속의 사람들이 아니다. <디지털 디톡스>라는 강제성을 띄며 고가의 상품도 있다. 지금 손에 죈 핸드폰을 내려두고 옆 사람과 얼굴을 보면 대화를 나누고 햇볕을 쬐고 새소리를 들어 보는 것이 어떨까?

  식당에 가면 편하게 밥을 먹기 위해서 아이들에게 유튜브를 보여주는 부모들을 심심찮게 본다. 하지만 그것을 만든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는 아이들에게 핸드폰을 쥐어주지 않는다. 숙제도 백과사전을 뒤져서 하라고 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에 공원이라도 있으면 아파트라도 지어 집 값이라도 내려라고 말하지만 굉장히 좋은 녹지 시설은 부촌들과 함께 있다.

  공백 없는 삶을 사느라 좁은 길을 바쁘게 살아왔다. 가끔은 하던 것을 놓고 고개를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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