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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무엇이 옳은가 (후안 엔리케스) - 세계사

야곰야곰+책벌레 2022. 4. 19.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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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른 기술 발전 속에서 철학과 윤리는 뒷전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인간답게 살아가는 사색보다는 당장 잘 살기 위해서 익히는 기술들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IT와 경제 그리고 그 사이를 채우는 인간관계와 리더십의 문제는 늘 중요한 관심사다. 그런 와중에 갑자기 등장한 마이클 샌들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신선한 질문이었고 꽤 오랜 시간 회자되는 책이 되었다. 하지만 책 자체가 매우 어려웠기 때문에 그리고 현실에 매칭 시키기에는 많은 고민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렴풋이 알게 된 정의가 현실에서 좌절되는 모습에 실망만 더 커졌는지도 모르겠다.

  같은 질문으로 그럼 '무엇이 옳은가'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윤리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세상을 통해서 조금은 더 포용성 있고 조금은 더 유연한 사고를 바라고 있는 이 책은 세계사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책은 우리가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는 '옳은 일'에 대한 정의로부터 파고들며 의문을 제시한다. 당신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는 그것은 절대적인 것인가?라고 묻는다. 인간은 자신의 옳고 그름의 판단의 기준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은 옳은 판단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과거의 평범했던 모습에 대해서 미개하다니 잔인하다니 평가를 한다. 그렇다면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모두 비윤리적인 사람들이었을까?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진을 보여 주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물론 나이 든 흡연자들은 그때가 좋았었지라고 반응할지도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실내에서 담배를 필 수 있느냐고 화를 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여전히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옳다는 것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것이다. 

  옳다는 것은 어떻게 익히게 될까? 당연하게도 우리는 부모님이나 선생님처럼 우리보다 한 두 대 앞선 사람들의 가르침을 받으며 옳음을 익힌다. 그것도 아주 강압적인 방법으로 말이다. 그러는 중에 혁명적인 집단이 이의를 제기하고 그것이 다수의 의견이 됨으로써 옳음의 기준은 옮겨 간다. 이 변화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지금 옳다고 하는 나의 행동이 시간이 지난 뒤에 악인의 모습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기술의 발달은 이런 윤리적 변화와 함께 맞물려 간다. 특히 바이오산업은 더 밀접할 수밖에 없다. 인간을 연구하는 일은 항상 윤리적인 문제 앞에 놓여 있다. 유전자 재조합에 의한 개량된 인간을 만드는 일은 그렇게 먼 미래의 일만은 아닐 것 같다. 지금도 논쟁 중인 줄기세포를 이용한 장기 이식은 어디까지 생명이라는 문제 앞에 놓여 있다. 낙태를 여성 인권을 위해서 옹호할 수 있던 것이 인공 자궁에서 잉태하는 태아에 대해서는 적용할 수 없게 된다. 식탁 위의 가짜 고기들은 진짜 고기를 먹는 사람들을 야만인 취급하게 할 수도 있다. SNS에서 증발되지 않는 기록을 남기는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엄청난 비난 앞에 놓일지도 모를 일이다.

  옳고 그름의 잣대는 사회적 구조나 시스템에도 적용할 수 있다. 노예 제도는 비인간적인 제도였다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다. 정신병으로 치부되었던 성소수자들 또한 이제는 인정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사회적 구조는 지금의 형태가 옳은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는 최고이고 사회주의는 공산당이나 하던 거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지금의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는 승자독식을 만들어내고 있고 많은 부를 가진 사람이 더 많은 부를 가지는 형태를 만들었다. CEO의 역할이 중요하기는 일반 사원의 수십 배에서 수백 배를 받을 만큼의 존재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더 많이 버는 사람에 대해 더 강한 세금 정책이 있어야 함에도 사회 구조는 정반대로 흘러갔다. 

  부의 양극화는 또 다른 곳으로 번진다. 최대의 이윤을 쫓아가는 자본주의에서 인간의 기본권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늘어나는 임금 대비 충분한 이윤이 나질 않는 부분에서는 급격한 비용 상승이 발생하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교육과 보건이다. 지금의 교육은 예전에 비해서 그렇게 나아지지 않았지만 투입되는 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인간은 농경을 시작한 이래 더 나은 뇌를 가진 적이 없다. 그저 기록/검색하는 방법이 개선되고 서로의 지식을 나누는 방법이 발전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학업 성취도가 월등히 늘어난 것도 아니다. 장난감 가격이 반 값이 되는 동안 학비는 2배를 훨씬 넘어 버렸다. 의료의 경우에도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지만 돈이 되지 않는 약은 만들지 않는다. 돈을 지불할 능력이 없는 가난한 나라에서 창궐하는 질병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치료비가 상승하는 만큼 병원장과 의사들의 급료는 올랐지만 의료 환경은 그렇게 많이 개선되지 않았다.

  이 책 또한 <정의란 무엇인가>처럼 어떤 답을 주려고 쓰인 것은 아니다. 옳고 그름에는 여러 요소들이 작용하고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두 의견에도 개개인의 신념이 자리하고 있다. 저자가 얘기하고 싶은 말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아닐 수 있다'이다. 자기 의심과 고민을 하고 상대의 의견을 단칼에 잘라내지 말고 들어 볼 수 있는 아량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저자는 여러 방면에서 생각해볼 만한 화두를 던졌다. 그 속에서 경제 선진국, 복지 후진국 미국의 민낯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세월이 흘러도 생산성은 늘지 않고 비용만 증가하는 보건과 교육에 대해서는 국가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기술과 함께 윤리는 빠르게 변화할 것이다. 어제는 옳음이 오늘은 그름이 될지도 모른다. 빠르지 못한 변화는 어쩌면 인류에게 재앙을 안겨 줄지도 모른다. 그리고 후대 세대에게 어리석음에 대한 혹평을 견뎌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미래의 윤리에 대해서까지 예측하며 살아갈 수는 없다. 단지 타인의 옳음에 대한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생각해 봄으로써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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