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BTS와 BlackPink를 중심으로 세계로 뻗어나가는 K-POP에 열광하는 이들이 많다. 이들의 성공은 Youtube와 같은 SNS의 역할과 함께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싸이의 <강남스타일>의 영향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준비되어 있었고 대중의 관심을 받으며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이렇게 왕성한 활동이 가능한 것은 그들을 지지해 주고 있는 팬의 든든한 지원이 있기 때문이다.
팬이 된다는 것은 지금의 시대에는 그렇게 이질적이지 않다. 많은 온라인 플랫폼으로 참여하고 지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조용히 응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맹목적인 사랑을 보내는 사람들과 더 과격하게는 <사생팬>이라고 불리는 사람들 때문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남아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사생팬>을 제외하고 보자면 이런 행동파 팬들은 팬클럽의 구심점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필요한 것 또한 사실이다. 이들의 사랑이 후회 없는 열정이 될지 유년 시절의 후회가 될지는 더 살아봐야 안다. 여기서 얘기할 것은 팬이라는 순수한 시각에서 얘기하고자 함으로 논외로 하자.
나는 24년째 열심히 응원하는 가수가 있다. 지금은 그냥 근황만 보고 같이 늙어가고 있다. (이 누님은 늙지 않아서 조금 서글프지만..) 서태지를 잃고 박정현과 이승환을 좋아하던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 온 가수였다. <아무로 나미에>, <우타다 히카루>와 함께 일본 3대 여왕으로 불리는 <하마사키 아유미>였다. 노래 실력 논란, 성형 논란 등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그녀는 전곡을 자신이 작사했고 그 가사는 나에게 잘 닿았다. 객관적인 평가는 좋아하지 않을 때 하는 것이라, 안티들의 지속적인 공격에도 괜찮았다. 요즘 친구들이 연예인들을 왜 좋아하는지 안다. 계기만 생기면 이유는 사실 큰 의미가 없다. 좋아서 좋은 거지.
그 당시에도 팬카페에서 노인 팬으로 간주될 만큼 어린 친구들과 함께 많은 얘기를 나누곤 했다. 한 손으로 꼽을 만큼 연장자였다. 그래서 나는 다른 친구들보다는 조금 차분히 좋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녀는 인생의 변곡점마다 나에게 꽤 많은 용기를 줬다. 대학원 진학과 군대를 두고 한 고민은 인생의 큰 갈림길이었다. 그리고 회사를 계속 다니는 것과 유학을 가려했던 것을 선택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한 번도 만나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무슨 영감을 얻느냐고 물어볼 수도 있지만 우리는 이미 많은 책에서 영감과 지혜를 받고 있지 않는가.
始めなきゃ始まらないから
(시작하지 않으면 시작되지 않으니까)
이 가사는 <Fly High>를 들은 이후로 나의 좌우명이 되었다. 이 노래 가사는 사랑과 이별에 관한 노래지만 인생에 비유해도 손색이 없다. <여기에 꿈을 둬선 안돼. 모든 건 이 손에 있어. 결정된 미래도 필요 없어. 모든 건 이 손에 있어. 움직이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지만. 모든 건 이 손에 있어. 시작하지 않으면 시작되지 않으니까>로 이어지는 이 노래 가삿말은 모든 것은 내 의지라는 것을 얘기해 준다. 그 뒤로 나는 마음이 있다면 시작해 보게 되었다.
그렇다면 좋은 팬 관계는 무엇일까? 팬은 그 상대에게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반대로 팬은 그 상대의 자리를 지켜주기도 한다. 그들이 힘들어졌을 때 그 상황은 역전된다. 팬은 상대를 지키는 사람으로 바뀐다. 전사가 될 필요는 없다. 나는 가장 좋은 예로 가수 이수영의 경우를 들고 싶다.
학교에서 따돌림을 받는 김재선은 이수영의 노래를 듣고 위로받으며 장래를 결정하고 노력할 수 있었다. 그리고 히든싱어에 나와 힘들어하는 이수영을 위로했다. 물론 이런 경우는 특별하다. 하지만 이제는 이름조차 거론되지 않는 연예인들의 팬클럽을 지키고 있는 많은 팬들은 있다. 이들은 그저 만나지 못할 뿐 의지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런 관계는 좋다고 생각한다. 아주 오랜 시간 연락을 닿지 않았더라도 만나면 반가운 것이 친구이듯 가끔씩 TV에 나오더라도 응원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 수 있다. (덕질을 꼭 한 명에게만 할 필요는 없으니, 연락 잘 안 되는 친구라고 여기면 된다.)
나는 덕질을 긍정적으로 보는 편이다. 연예인을 좋아하는 것이 비생산적인 일로만 치부할 것도 아니다. 아무도 나를 위로해 주지 못한다고 느낄 때 그들의 존재는 한 줄기 빛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얘기하자면 주위에 그런 빛의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적어지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만약 자신이 자신을 믿어줄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내가 너를 믿어줄게.
<Believe in myself>를 부르던 도중에 LiSA(블핑 리사 아니다)가 관중들에게 던진 말이다. 동경하는 사람의 말은 생각보다 큰 힘이 있다. 덕질을 소모적인 행위로만 볼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위로의 좋은 방법일 수 있다고 생각해 보자. 이제는 고민을 아내와 나눌 수 있게 되었고 덕질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지만 여전히 한 번씩 근황을 살핀다. 아주 오랜 친구처럼 잘 지내는지 궁금할 뿐이다. 고민이 많았던 시절에 대한 고마움이 남아 있기도 하다.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는 것. 좋은 것이라 생각한다. 아이에게 동경하는 사람이 생기면 무턱대고 비난하기보다는 좋아하는 감정을 어떻게 컨트롤할지를 얘기해 보는 게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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