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서평+독후감)/소설

행성어 서점 (김초엽) - 마음산책

야곰야곰+책벌레 2022. 1. 2. 23:37
반응형

  <방금 떠나온 세계>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김초엽 작가의 새로운 책이 출판되었다. <행성어 서점>은 김초엽 작가의 14편의 초 단편을 모은 소설집이다. 굉장히 다크하고 희망이 없다는 후기를 종종 보였는데, 책을 읽은 후 나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초 단편이었기 때문에 메시지를 문장으로 옮길 지문이 적었을 뿐 모든 내용은 일관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제목에 걸쳐 있는 <행성어 서점>이라는 작품은 그다지 두드러지는 작품은 아니었지만 제목이 걸려 있는 이유는 그 내용에서 찾을 수 있다. 모두들 뇌 속에 번역기를 장착하고 다니면서 이런저런 행성을 다니는 사람들 속에서 <행성어>로 쓰인 작품을 파는 서점에 번역기에 거부 반응을 일으킨 한 교수가 방문한다. 그녀는 독학으로 행성어를 익혔고 행성어 서점에서 행성어로 된 책들을 구입한다. 

 누구에게도 읽히지 못할 글들이라고 생각되었지만 누군가의 노력으로 읽히게 되는 것이다. 그런 14편의 단편을 모은 소설집이었기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제목이었다. 내 생각대로 초엽 작가는 자신이 생각해 놓은 많은 재료들을 털어내고 있었다. 아이디어가 아이디어로 묻혀버리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지 않았을까. 고민을 거듭하며 적어가는 장편 못지않게 한숨에 적어낼 수 있는 자연스러움이 있는 초단편도 그 의미는 있지 않을까. 행성어를 배워 책을 읽으려 했는 그 사람처럼 세상에는 그런 자신의 작품을 읽어주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그런 고민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모든 글이 좋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좋은 글을 뽑아 보자면 <선인장 끌어안기>에서 사랑은 참아주는 것인지 고통을 주지 않으려는 것인지에 대한 설정과 질문이 좋았다. <데이지와 이상한 기계>에서는 결국 나 아닌 존재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이며 그들의 세상에 접속할 수 없다는 대목이 좋았다. <포착되지 않는 풍경>에서는 너무 앞서버린 문명들이 해결하지 못한 숙제를 어느 한 노인이 느긋이 이젤을 놓고 그림을 그리는 풍경만으로 하고 싶은 말이 전달되었다. 

  <다른 방식의 삶이 있음을>으로 묶인 6편의 단편들은 관계에 대한 얘기를 다뤘다. 각각이 하나의 단편이었지만 묘하게 연결되어 있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공유하는 것이 점점 없어지는 개인주의적 사회에서 같이 나눌 음식의 의미가 있다는 얘기도 질병으로 쓰인 가면으로 인해 자신의 속마음을 속이기 위한 표정을 짓지 않아도 되는 편함이 되었다는 것도 의미가 있었다. ( 가면은 지금의 마스크를 의미하는 것 같았지만) 곰팡이나 버섯을 소재로 한 균사 네트워크를 스토리에 녹여 공감과 공유에 대한 이야기를 시도하는 것도 좋았다.

  이번 <행성어 서점>은 단편 단편으로는 꽤나 매력적인 소재였지만 작가 스스로가 아이디어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다 털어내는 작업이었다고 해도 좋을 듯했다. 어느 작품을 잡아서 장편으로 써도 될 정도로 괜찮은 아이디어였다. 그럼에도 만족할만한 장편으로 만들기 어려웠음이 있었을 것 같다. 그래서 아이디어가 노트에 묻히지 않고 독자의 눈에 닿도록 이런 기획을 한 게 아닐까 싶었다. 

  생각보다 재밌었고 단편이지만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고 공감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역시 초엽 편향적인 리뷰가 된 듯 하지만 감동받을 준비를 하고 읽은 독자의 어쩔 수 없는 후기가 된 것 같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