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서평+독후감)/소설

(서평) 셔기 베인 (더글러스 스튜어트) - 코호북스

야곰야곰+책벌레 2021. 12. 29.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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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의 나의 시점으로 본다면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작품이다. 영미 소설은 여전히 정서적으로 생경함이 앞선다. 책을 덮고 나서도 무엇을 얘기하려고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단지 셔기 베인이 마음의 짐을 내리고 그나마 말동무가 되어주는 리앤이 옆에 있어 줬다는 것으로 안도감을 가질 수 있었다. 부커상을 받은 대부분의 이야기는 비슷한 면이 있다. 어려운 시절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그들의 타락을 읽고 있음에 짜증이 밀려오고 답답했다. 이건 또 다른 공감일까?

  1980년대의 암울했던 글래스고의 한 여자의 처절한 삶과 그 옆에 끝까지 지켜낸 한 소년의 이야기는 코호 북스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셔기 베인은 소설 전체를 이끌고 있는 애그니스 베인의 막내아들이다. 애그니스 베인은 가톨릭을 믿는 전 남편에 회의를 느껴 이혼했으며 카사노바인 빅 셕 베인에 의해서 철저하게 망가졌다. 한 때 그녀는 일 년 넘게 술을 끊은 적도 있었지만, 자신의 사랑이 알콜 중독자임이 혼란스러웠던 유진이 애그니스에게 술을 조용하는 바람에 모든 행복은 부서져버리고 말았다.

  매일 술과 욕지거리로 사는 어머니와 자신을 호모라고 놀리는 친구들 속에서도 셔기 베인은 흔들림 없이 곱게 자랐다. 그의 누나와 형도 차례대로 집을 떠났지만 그들도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반듯하게 자랐다. 충분히 삐뚤어질 수 있는 가정환경이었는데 어머니의 행복만을 바라는 셔기 베인의 마음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어느 대목에서 감동을 받아야 할까? 이 작품은 여성의 서사인가 아이의 서사인가 조금 혼동스럽다. 제목은 셔기 베인이지만 모든 스토리는 애그니스가 끌고 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셔기 베인이 성인이 되기도 전에 이야기는 마무리되어버리기까지 한다.

  소설의 대부분의 남성들은 악당 같다. 조선소가 문을 닫으면서 실업이 급증했다. 다들 실업 급여를 받아서 술을 마시고 유흥을 즐기기에 바빴다. 남성들 또한 가정을 지킬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여자들은 살아가기 위해서 몸을 내어 주는 일이 허다했던 것 같다. 맨 정신으로 살아가기 어려운 삶 속에 알콜 중독자들도 많았던 것 같다. 이런 전제를 깔아 준다면 술이 찌들어서 아이들을 내팽개치고 사랑에 목말라 헤매는 이 여성에게 측은한 마음이 들까? 알콜 중독이라는 것이 헤어 나오기 너무 힘든 병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녀의 아픔을 쉽게 공감해 주지 못했다.

  단지 왜 남자들은 저 모양일까 싶었다. 셕 베인은 이미 죽일 놈이었고 유진이 애그니스에게 술을 지속적으로 권할 때 걷어낼 수만 있다면 책 속에서 걷어내고 싶었다. 그런 분노가 유혹을 이기지 못한 애그니스에게로 전해지면서 독서에 화가 묻었다. 불 같이 화를 내며 유진에게 달려든 장남 릭의 모습에 백번 공감이 갔다. 왜 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해할 수 없었다.

  그 결정적인 사건 이후로 쭉 힘든 독서였다. 작품 속에서는 샤기 베인이 홀로 분투하고 있었고 가끔은 집을 떠난 릭이 마음을 한 번 쓸어주고 갈 뿐이었다. 불현듯 나타난 리앤 덕분에 샤기 베인의 마음의 짐이 조금이나 덜어지는 것이 그냥 고마운 느낌이었다.

  작품이 당시의 시대를 잘 대변하는 것은 인정한다. 사랑에 목매인 여성의 알콜 중독 또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단지 왜 사랑에 그렇게까지 목을 맬까는 이해할 수 없었다. 처절하게 환경을 이겨내는 스토리도 아니었다. 절망에서 절망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잠깐의 반짝임으로 더 절망스럽게 만들었던 작품이었다. 시종일관되게 어두운 작품에 그나마 밝음으로 남아 있을 수 있는 샤기 베인의 <사랑>. 그래서 제목을 샤기 베인으로 정했을까?

  떠나간 남자에게 복수하는 방법은 '존나 잘살면 된다'라는 대목에서 잠깐 희망의 복선이 있었지만 다 거둬 가버렸고, 마지막 장면에 셔기 베인이 웃을 수 있게 된 것 만으로 만족하게 되었다. 나이가 들면 이해의 폭의 넓어진다고 했던가. 그럼에도 나는 이상적인 사랑의 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애그니스가 못 마땅한 현실적인 사랑을 하는 인간이었음을 다시 한번 느꼈다.

영미 소설의 문화적 낯섦이 얼마나 더 많은 책을 읽어야 익숙해질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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