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서평+독후감)/소설

방금 떠나온 세계 (김초엽) - 한겨레출판사

야곰야곰+책벌레 2022. 1. 1.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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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초엽이라는 장르는 이제 확실한 장르가 된 것 같다. 지금 문제라고 인지할 수 있을 법한 것들을 테마로 잡아서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으로 풀어가지만 그 안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작가의 스타일은 지난 몇 권에서 느낄 수 있었다. 

  김초엽 작가의 7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이번 작품 또한 그런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전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조금 낭만적인 이야기였다면 이 책은 그것보다는 조금 더 현실적이다. 김초엽 작가의 한 편에 하나의 메시지를 담으려고 애쓴 모습이 잘 드러나고 있다.

  제목에 나타난 <방금 떠나온 세계>는 인지 공간이라는 단편에 스치듯 지나간다. 많은 단편 중에서 인지 공간에서 제목을 발췌한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6개의 작품은 다름을 가지고 시작해서 이해로 종결된다면 인지 공간만은 획일성에서 시작해서 개성 혹은 존재의 유일성과 같은 의미로 나눠진다는 점에서 달랐다. 방금 떠나온 세계에서는 다름을 인정하지 못한 세계였기도 했고 다수를 위한 유일성을 강조하는 세계였기도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세계로 출발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세 번째의 소설 로라가 담고 있는 메시지 "사랑하지만 끝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신에게도 있지 않나요"는 상대의 다름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얘기한다. 자신의 뇌 회로 속에는 팔에 3개가 있는데 그것을 결국 단행하는 로라. 그 모습을 결코 이해할 수 없었던 진. 하지만 둘 사이가 금이 가거나 하지 않는다. 별나도 내 친구인 것처럼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도 사랑할 수 있지 않냐며 묻고 있는 것 같았다.

  서로가 서로의 존재에 대한 이해를 다룬 최후의 라이오니, 마리의 춤, 숨 그림자, 캐빈 방정식은 김초엽 특유의 색채가 잘 묻어 있었다. 소재는 독특하고 전개도 나쁘지 않았지만 너무 많은 여운을 남기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 단편 하나하나가 장편으로 써 내려가도 될 법한 주제들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오래된 협약은 지금의 인류에게 던지는 메시지였다. 원래는 살아갈 수 없는 행성에서 오브라는 식물은 인간이 살아갈 정도의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스스로 잠에 든다. 하지만 이 행성을 방문한 다른 인류는 사람이 오래 살 지 못하는 이유가 오브 때문이며 오브를 먹으면 모두 치료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곳의 존재들은 원래 그대로 살아가기로 한다. 이 글은 지금의 기후 재앙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원래 지구가 내어 준 곳에서 인간은 공존의 삶을 버리고 잘 살아가기 위함을 택했다. 그로 인해 더 많은 풍요로움과 더 긴 생명을 얻었지만 이제 위기 앞에 서 있다. 

  신도 금기도 없고 오직 약속만이 있을 뿐이라는 대목에서 인류가 살 수 없는 환경에서 살 터전을 내어주었으니 그 약속을 철저히 지키며 살아야 한다는 그들의 종교적인 메시지는 결국 오브 즉 자연과의 약속이었던 것이다. 지구와 인간 사이에도 약속이 있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을 독자에게 하고 있다. 대답은 각자의 몫이지만...

  이 책에서도 김초엽 작가는 여전히 희망을 얘기하고 있었다. 앞에서 얘기했듯 이전 작품보다는 조금 더 깊은 주제로 넘어왔다. 낭만적이어서 좋았던 독자들에게는 조금씩 어색해지는 부분이 생기지도 않을까 싶었다. 이다음 책인 <행성어서점>은 더 다크 하다고 하던데.. 사회의 문제를 고민하는 깊이가 점점 더 깊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런 이유로 <행성어점>도 너무 기대된다.

  한 편 한 편이 장편으로 적을 수 있을 법한 주제였지만 한꺼번에 모두 내놓았다. 아마 충분히 길게 충분히 만족스럽게 쓸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집착을 버리려 단편으로 모두 소모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어떤 장편을 준비하길래 이런 맛깔스러운 소재들을 다 털어내는지 김초엽 작가의 상상력에 다시 한번 감탄하고 있다.

  바로 <행성어서점>으로 돌입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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