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서평+독후감)/소설

(서평) 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 작가정신

야곰야곰+책벌레 2021. 12. 15.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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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은 세 챕터로 구성되어 있고 한편 한편이 독립적인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지만 세 이야기는 분명 서로 이어져 있었다. 율리시스 신부의 흔적을 쫓아간 토마스, 아들을 잃은 슬픔에 죽어간 남편의 부검을 의뢰한 마리아, 마지막으로 침팬지와 동질감을 느끼고 그와 함께 살아가기로 한 피터의 이야기다. 앞에서 흘린 이야기의 미완을 뒷 이야기가 어느새 이어 주곤 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소실로 시작되는 여행의 두 가지 키워드로 압축할 수 있는 세 가지의 스토리로 구성된 이 책은 작가정신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책에서 얘기하는 포르투갈의 북동부 지역에는 '높은 산'이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작품에서는 높은 산을 삶의 종착지 혹은 집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곳에 도착해서 이룬 삶의 깨달음 때문인지 그곳까지 다다르기까지 겪는 많은 고초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작가는 '높은 산'이 주는 의미를 사용하려 했다. 실제로 첫 번째 두 번째 이야기를 쓸어 담아 세 번째 마지막 이야기에서 높은 산의 의미를 얘기하려 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1부 '집을 잃다'에서는 신에 대항해 찾으려 했던 십자고상. 그것을 얻기 위해 포르투갈의 높은 산의 교회를 찾아 나선다. 온갖 어려움을 겪으며 도착한 그곳에는 인간이 아닌 침팬지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의 실망인지 희열인지 모를 외침으로 1부를 마친다. 율리시스 신부는 노예 제로를 당연히 여기던 당시 기독교에 대항하기 위해 십자고상을 만들었다. 그는 아프리카 노예들에게 세례를 해주는 일을 했었다. 그는 모든 인간은 같은 유인원에서 진화했고 모두는 평등하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2부 '집으로'에서는 1부에서 토마스가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가다가 치여 죽인 아이의 엄마가 아이의 아빠의 시신을 데려와 부검하는 이야기로 되어 있다. 시종일관 부검을 하는 이야기로 쓰여 있지만 그 표현이 꽤나 독특해서 읽는데 조금 신선했다. 누구보다 종교에 독실했던 남편의 심장에는 침팬지와 곰 한 마리가 있었다. 부인은 그런 남편의 몸속으로 들어갔고 몸에서 나온 온갖 물건들은 가방에 넣어 두었다. 절실하고 순수한 마음 또한 유인원에서부터 나왔다고 저자는 얘기하고 싶었던 걸까.

  3부 '집'은 모든 이야기를 정리한다. 아내와 사별한 피터는 유인원 연구소에 우연히 침팬지 오도를 만난다. 그는 운명처럼 그와 교감하고 그와 함께 살기 위해서 아주 어릴 적 잠깐 살았던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돌아간다. 문명의 혜택이 적은 곳이었지만 마음은 충만했고 오도와 지내는 것 또한 즐거웠다. 어느 날 그는 집 한편에서 가방을 발견하고 그 속에 들어 있는 부검 의견서를 읽게 된다. 그리고 마을 사람에게 물어 그가 2부에 나왔던 사람들과 같은 핏줄임을 알게 된다.

  신을 등지고자 했던 토마스가 마지막에 만난 것도 종교에 독실했던 마리아의 남편의 몸속에서 나온 것도 피터가 모든 걸 내려두고 동반자로 삼았던 것도 모두 유인원이었다. 왜 사랑하는 이를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이 만난 마지막의 장면에서 왜 항상 유인원이 있었을까? 그것은 인간의 내면 깊숙이 있는 순수함을 얘기하고자 했음이 아닐까 싶었다. 3부에서 피터가 오도에 대해 묘사하는 부분을 보면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오도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표현했을 뿐이고 보고자 했던 것을 보아 온 것이다. 개들과의 관계에서도 화를 내고 용서하는 것이 명확하였다. 오직 인간만이 행동에 의미를 부여해 여러 망상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오도의 행동이 묘사되고 있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피터는 오도의 도움으로 바위에 올라 넓은 사바나로 펼쳐진 광활함에 감동받고 멸종되었다는 이베리아 코뿔소를 보며 감동의 순간에 눈을 감았다. 세 이야기의 제목에 모두 '집'이 들어간 것도 높지 않은 산을 높다고 표현한 것도 마지막 순간에 있을 수 없는 감동을 맞이한 것도 모두 인간에게는 돌아가야 할 곳이 있고 그것은 어쩌면 일차원적인 것이라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모든 것에서 벗어나 내가 진정 나일 수 있는 순간을 경험해 보라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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