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화이트 아웃이라고 해서 히말라야를 생각했다. 왜 눈 내리고 힘든 산에 대한 도전 하면 히말라야만 생각나는지 모르겠지만 인류가 끊임없이 도전하는 곳이라서 그랬나 보다. 화이트 아웃은 눈보라가 너무 거칠어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하얗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작품에서는 앞길이 막막할 때 화이트 아웃이 종종 등장했다.
해발 2000미터 이상 눈으로 뒤덮인 산에 있는 일본 최대의 댐에 일어난 테러 집단과 자연에 대한 댐 관리 직원의 처절한 사투를 그린 이 작품은 크로스로드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오쿠토와 댐은 해발 2000미터가 넘는 산에 있는 일본 최대의 댐이다. 높은 곳에 있을 뿐 아니라 겨울에는 엄청나게 많은 눈이 내리기도 한다. 겨울이 되면 대부분의 길은 차단되고 관리소로 가는 아주 긴 터널만이 유일한 통로였다. 고립되기 너무 쉬운 장소였다는 점이 이 작품의 스토리를 모두 가능하게 만들었다.
과거의 두 짤막한 시나리오로 두 인물의 행동의 인과성을 깔아 두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조난자를 구하다 혼자만 살아온 도가시. 전력회사 테러 사건으로 가족을 모두 잃은 고시바. 한 명은 친구에 대한 속죄를 한 명은 가족을 위한 복수를 위해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한다.
죽은 남자 친구 요시오카의 흔적을 찾아 오쿠토와 댐 견학을 오는 지아키의 장면으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테러범들은 견학을 오던 지아키를 유일한 경로인 터널에서 마주치고 그녀를 인질로 잡고 터널을 폭파시킨다. 댐은 순식간에 점령당하고 도가시는 구사일생으로 탈출하게 된다. 구조를 위해서 설산을 내려오려고 했지만 터널은 막혀 있었고 요시오카의 여자 친구가 인질로 잡힌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요시오카에서 속죄할 것이 있었지만 되려 그녀의 여자 친구를 테러범에게 잡히게 하고 만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문 테러범들에 맞서가는 댐 관리 및 설산의 전문가 사이의 숨 막히는 설전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만들었다.
이 책의 백미는 댐 구석구석을 알고 있는 도가시와 테러범의 대치와 설산의 묘사 그리고 도가시의 심리와 내적 갈등의 치밀함이었다. 고이데 전력소에서 직접 인터뷰를 진행한 작가의 노력이 글 속에 그대로 녹아들었다. 출구가 없을 것 같은 장면에서 탈출구를 만들어줄 뿐 아니라 그것의 정당성까지 부여했다. 넓게 봐도 설산 속이었고 좁게 보면 댐 하나인 좁은 장면에서 500페이지가 넘게 집필할 수 있는 점과 마지막까지 박진감 넘쳤던 스토리는 작가의 치밀한 자료 조사 노력의 결과였을 것이다.
이 작품은 범죄 스릴러라는 장르에 맞게 빠른 전개 속에 박진감이 있다. 도가시의 초인적인 모습에 의문을 품을 수도 있지만 그가 오랫동안 설산을 누비고 댐을 속속들이 아는 베테랑이며 죽은 동료에 대한 깊은 죄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납득할 수 있게 만들었다. 더불어 속죄를 위해 자연에 대항하려는 처절함과 자신의 속죄를 위해 내딛는 의지에서 휴머니즘까지 느낄 수 있었다. 긴장감과 흥미 속에 주인공을 응원하게 만들고 절정에서는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종국에 잔잔하게 마무리되었지만 감동의 여운은 그대로 남아 있다.
읽으며 불편했던 점은 일본 소설인데 테러범들을 북한으로 했다는 점이었다.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인데 혐한이 많은 일본에서 이런 소설은 혐한을 더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이 소설이 한국 소설이었다면 개의치 않고 읽었을 것 같다. 또 하나는 민영화의 문제를 여실히 드러낸 소설이었다. 민영화는 효율을 추구하기 때문에 작은 댐들은 원격으로 제어하고 도쿄의 수많은 도시를 물에 잠기게 할 수 있는 이런 위험 시설에 민간 관리자 몇 명만 둔다는 것이 민영화의 문제 중에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국가의 안일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이런 점을 빼고 본다면 마지막까지 생동감 있는 문장으로 가득 찬 이 책은 훌륭한 책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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