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서평+독후감)/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 문학동네

야곰야곰+책벌레 2021. 12. 6.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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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공 경하의 꿈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왠지 모르게 슬픔이 있었다. 주말에 보았던 부모님의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음인지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 감정은 나를 뒤쫓고 있었다. 그리고 친구 인선의 전화와 손가락이 절단되어 봉합 후 치료하는 과정의 세밀한 묘사로 나도 모르게 섬뜩함을 느꼈다.

  친구 인선으로부터 제주도 집에 홀로 있을 새에게 모이를 주는 일을 부탁을 받는다. 그것은 새를 살리는 일이라고 했다. 경하는 평소 부탁을 잘하지 않는 인선이었기에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제주로 나서게 된다. 절망으로 향하는 행운인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비행기를 탔지만 괴로운 비행이었고 제주도는 폭설이었지만 경하는 또 아슬아슬하게 마지막 버스를 탈 수 있게 된다. 인선의 집은 한 번 밖에 가보지 못했어서 길을 헤매다 얼어 죽을 수도 있는 노릇이었지만 또 그렇게 도착을 하게 된다.

  인선의 집에 도착한 직후 경하는 제주 민간인 학살과 얽힌 이야기와 마주하게 된다. 다큐멘터리를 위해 모아둔 인선의 수많은 자료들이 마치 인선이 이끌 듯 경하에게 전하는 전개는 병실에서 힘겨워하던 인선의 혼이 찾아와 경하에게 스며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제주 민간인 학살 사건을 자연스럽게 독자에게 이야기해준다.

  제주 4·3 사건은 1947~1948년에 발생한 일이며 제주도에서 일어난 무력충돌에 대한 강경 진압에 의해 발생되었다. 민간인 희생자가 최대 3만 명까지도 추정될 정도로 엄청난 사건이었지만 군부 정권이 끝나고 나서야 진상규명에 대한 특별법이 통과되었고 2019년에 이르러서야 공소기각과 함께 무죄를 인정받게 되었다. 70년 만의 일이다.

  그 긴 시간의 유족들의 아픔을 인선의 손가락으로 표현하고 있다. 제주 4·3 사건은 여전히 아픈 사건이다. 잘린 손가락을 접합하지 않은 채 봉합하면 금방은 아프지 않겠지만 그 고통은 평생을 가게 된다. 반대로 접합하려면 피가 굳지 않게 끊임없이 주사를 놓고 소독을 해야 한다.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3분에 한 번씩 해야 할 정도로 자주 해줘야 한다. 제주 4·3 사건의 아픔을 제대로 치유하기 위해서는 아픈 일이지만 피가 돌 수 있도록 더 많이 더 자주 이 일에 대해서 나누고 공감해야 한다는 것을 작가는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인선이 살려달라고 했던 <새>는 제주 4·3으로 인해 희생된 사람들이었다. 경하가 인선의 집에 도착했을 때 새는 이미 죽어 있었다. 경하는 새를 잘 묻어두었지만 이내 인선의 혼과 함께 인선의 집에서 살아났다. 그 사실은 우리가 과거의 사실을 제대로 마주할 자세를 가진다면 그들은 죽었지만 그들과 진정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작품은 인선이 이끄는 그 시절의 기억 속에 스며들 수 있도록 폭설이 쏟아지는 제주를 선택했다. 눈은 세상을 뒤덮어 본 적 없는 세상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눈이라는 것 자체도 지상에서 날아오른 먼지에 물방울들이 붙어 만들어지는 것으로 끊임없이 순환하는 물이라는 존재와 제주의 표면에서 날아오른 무언가와의 결합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게 작가는 현재와 과거를 이어준다.

  우리가 아픈 과거를 마주하는 일은 그렇게 쉽지 않다. 제주의 일이 인선의 입장에서는 잘려나간 손가락처럼 아픈 일이지만 경하의 입장에서는 귀찮은 일이지만 친한 친구가 부탁해서 겨우 움직일만한 일이며 그곳에서 도착하기까지 너무 많은 힘겨움이 있다. 아픈 과거를 들추어 마주하는 것은 경하가 인선의 집에 도착하기까지 만나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일과 같다. 그 여정에 함께 한 '운'처럼 우리에게도 '운'이 필요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혼자가 아닌 많은 사람의 '운'이 더해져 그 마음이 널리 퍼진다면 과거가 잊히는 것이 두렵지 않을 것이다. 그야말로 작별하지 않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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