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서평+독후감)/소설

(서평) 키르케 (매들린 밀러) - 이봄

야곰야곰+책벌레 2021. 12. 1.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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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처음 접한 건 김겨울 작가의 유튜브 채널에서다. 그리스 로마 신화 중에서 비중이 낮은 한 캐릭터를 가져와 집필하였다는 점이 독특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법한 대단한 존재가 아니었다. 오디세이아에서 오디세우스의 발목을 잡은 하급 신이며 마녀였다. 작가는 왜 그녀에게 끌렸는지는 책을 읽어보며 알 수 있었다. 너무 재밌는 책이었다.

  조연 중에서도 아직 작은 부분을 차지했던 존재 키르케를 재해석한 이 책은 이봄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키르케는 님프라는 종족이었으며 신들 사이에서는 어떻게 해도 되는 그저 순응을 강제당하는 존재들 중에 하나였다. 그녀는 태양의 신 헬리오스의 딸이며 바다의 신 오케아노스의 외손녀였기 때문에 조금은 다른 대우를 받았지만 신보단 인간을 닮은 덕에 많은 주위로부터 외면을 받으며 산다. 님프에게 아름다움이 없다는 것은 능력이 없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녀의 삶을 뒤 바꾼 사건은 인간을 사랑하면서부터다. 그를 '신'으로 만들어주며 자신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깨닫게 된다. 신들은 하급 여신인 님프에게 그런 능력이 있을 거라고 믿지 않지만 키르케의 동생이 마법을 선보이자 헬리오스는 키르케를 제물로 삼아 영구히 유배를 가게 된다. 그곳에서 그녀는 마녀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아무도 오지 않는다는 것. 아무도 올 일이 없다는 것.
그 자체가 두려운 사실이었지만
공포로 얼룩진 긴 밤을 보내고 났더니
모든 게 사소하고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가장 못난 겁쟁이의 면모가 진땀과 함께 날아갔다.
아찔한 번뜩임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키르케가 변모하는 결정적인 장면이었다. 자신에게는 선천적으로 가진 힘은 없지만 게으른 신들이 가지지 못한 끈질김이 있었고 마법이라는 것은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힘이었다. 섬에서 재료를 구하고 마법을 익힌다. 가끔씩 표류해 오는 사람들을 구해주기도 하고 은혜를 모르고 덤비는 사라들은 모두 돼지로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달랐고 그는 그녀에게 호감을 이끌어 낸다. 그렇게 오디세우스가 발목이 잡힌 에피소드와 겹치게 된다. 작가는 둘을 이해와 사랑의 관점에서 그려 나갔다. 그이 아이를 놓고 아테나에게로부터 아이를 지키는 스토리까지 쭉 이어졌다.

    오디세우스의 아들이 아테나의 제안을 거절하고 대신 키르케의 아들이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녀는 아들을 보내고 나서 자신이 걸어온 인생을 정리하려고 한다.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던 아버지 헬리오스를 불러 협박을 하고 유배에서 벗어나 자신이 괴물로 만든 스킬라의 명을 정리해 준다.

너는 언제나 내 자식들 중에 못난 녀석이었지.
내 이름에 먹칠하는 일이 없도록 해라.

...
저한테 더 좋은 생각이 있는데요.
그냥 제 마음대로 살 테니까
앞으로 자식을 꼽을 때 저는 빼주세요.

  천년의 세월을 사는 신이었지만 인생의 후반부에 이르러서 비로소 아버지 헬리오스를 마주할 용기가 생겼다.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는 의지와 용기가 생겼다. 가장 미천한 여신인 님프로 태어나 자신이 가진 다른 능력을 알아채고 성장해 가는 키르케라는 여신의 일대기를 유배를 끝내고 이곳저곳을 여행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물론 평범하지만 따뜻한 행복과 함께.

  이 작품은 최초의 '마녀'로 기록된 키르케를 주인공으로 삼음으로 페미니즘 도서로 구분하는 사람들도 있다. 마녀라는 것이 어두운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지만 어떻게 보면 능력 있는 여성을 대변할 수 있다. 능력 없이 수동적인 삶을 사는 님프 키르케에서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게 되는 마녀 키르케로의 변화에서 그런 점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존재가 성장하는 그것 자체로도 충분히 훌륭했기 때문에 문장이 너무 매끄러웠기 때문에 너무 즐겁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서 잠깐 등장하는 조연도 이런 멋진 스토리를 가질 수 있구나라고 감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스토리의 끊김 없이 너무 매끄럽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500p의 양이 그렇게 많다고 느껴지지도 않았다. 신화의 요소를 비틀지 않으면서도 이렇게 완벽하게 집필해낸 작가의 대단함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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