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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어둠의 속도 (엘리자베스 문) - 푸른숲

야곰야곰+책벌레 2021. 11. 16.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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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폐인 아들을 20여 년 키워오며 그들의 네트워크와 끊임없이 소통하던 작가가 정상과 비정상의 정의에 관해서 적어나가는 근미래 SF소설이면서 철학서다. 나는 무엇인가? 정상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10년 만에 다시 발매된 이 책은 푸른 숲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사실 띠지에 박혀 있는 <김초엽> 작가의 서평 문이 책을 조금 오해하게 만들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책을 덮고 눈에 띈 띄지의 글을 보고 느껴졌다. 이 책은 장애를 비정상으로 보지도 않으며 치료할 대상이라고 말하는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초엽> 작가의 소설도 무척 좋아하지만 이 작품은 <김초엽> 작가의 작품에서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된 작품 느낌이었다. <잔류 인류>에 이어 소수자의 가치에 대해 논하는 이 책은 읽는 내내 감동과 흥미를 나에게 주었다.

  어둠은 속도가 있을까?라는 질문은 실제 작가의 아들이 작가에게 했던 질문이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서 더 넓은 범위의 어둠과 빛으로 확장해 나간다. 정상과 비정상, 삶과 죽음, 배려와 폭력 등 사회의 가진 다양한 양면성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특히 작품 내내 끊이지 않은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질문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정상과 비정상을 우리는 어떻게 구분하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여기에도 다수결의 원칙을 따른다. 많은 수의 사람이 정상이 되며 이 무리를 벗어나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하고 무리에 해를 될 듯 같으면 경계를 한다. 이것은 생물학적으로는 지극히 당연한 본능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간이기에 이것에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적자생존>의 잣대로 모든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에도 소수의 의견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배우기도 했다.

  주인공 <루>는 자폐증을 가지고 있지만 훌륭한 시스템 덕분에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었으며 제대로 된 집과 자동차 그리고 직장을 가질 수 있었다. 현실은 이런 삶을 살아가기 힘들기 때문인지 작가는 근미래의 모습을 상정하게 된 것 같다. 사회에서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는 자폐인이 <자신>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사회에서 적응하기도 바쁜 지금의 현실로는 그려 나가기 어려웠을지 모르고 실제로 의학도 비약적으로 발달하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루>를 통해서 전달되는 정상성은 어떤 것일까? 사람들은 자폐인들을 비정상적이라고 하며 치료가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루>가 봤을 때에는 정상인들은 정상적이지 못할 때가 많았다.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그는 <감정적인> 그들의 말과 행동을 학습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었다. 말과 행동이 다른 우리는 과연 정상적인 걸까?라고 그가 되묻는 것 같았다. 

  작품을 읽으며 <어둠>이란 것으로 무엇을 얘기하고 싶은지를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패턴이 어긋났을 때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공포를 말하는 것 같기도 했고, 쉽게 그려지지 않는 미래를 얘기하는 것 같기도 했다. 어둠은 늘 현재보다 앞서 있었다. 알 수 없는 예측할 수 없는 불안은 어둠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둠은 늘 빛 보다 앞서 있었다. 빛은 늘 어둠을 가르며 나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루>는 어둠의 속도에 대해서 종종 얘기한다. 빛이 오기 전에 어둠이 와 있으므로 어둠은 빛보다 빠르다고.

  패턴을 잘 읽을 수 있는 <루>의 에피소드 중에 아이와 보모의 에피소드가 가슴을 쿵하고 쳤다. 루가 보기엔 아이는 너무 즐거운 기분을 표출하는 패턴을 내어 보이고 있는데 부모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이 대목을 읽고 말썽쟁이 아들이 떼를 너무 써서 방에서 아이를 잡고 혼내주던 날의 기억이 스쳐가며 가슴 아픔이 느껴졌다. 책을 놓아두고 화상통화를 하며 활짝 웃어주는 녀석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또 저지레 하면 나는 불 같이 화를 내겠지만..)

  <돈>의 에피소드를 보면 치료에 대한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또 다른 질문을 받는다. 자폐증을 고칠 수 있는 치료에 임하는 것이 진정 정상적인가. <루>를 해치려고 했던 <돈>이 받은 형벌은 결단을 내릴 수 없도록 하는 칩을 머리에 심는 것이었다. 정상인들은 이것을 정상적이라고 했다. <돈>의 입장이 아니라 공동체에 해를 입히지 않는 입장에서 정상이라는 것이다. <루>가 치료를 받는 것 또한 그러면 정상이 되는 것일까? <루>는 그런 고민을 마치고 결국 자신을 위해서 치료를 받게 되지만, 뇌를 치료한다는 것은 어떤 윤리적 문제가 있는지 고민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뇌의 치료는 곧 마인드 컨트롤로 이어질 수 있기도 하다.

  자폐와 장애라는 조금은 어두운 소재로 시작하지만 책은 그것을 느낄 수 없을 만큼 많은 질문을 쏟아낸다. 사람들이 비정상이라고 얘기하는 것들은 언젠가 정상으로 바뀔지 모른다. 지구가 태양이 돈다고 얘기하는 것이 비정상인 시대도 있었고 지구의 나이가 45억 년이라고 얘기하는 것이 비정상인 시대도 있었다.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는 것이 비정상이라고 얘기하는 시대도 있었고 미니스커트를 입는 것이 비정상인 시대도 있었다. 정상과 비정상은 영원한 것이 아닌 것 같다.

  지금은 사이코패스가 비정상이고 대단히 위험하다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이렇게 빠르게 바뀌는 사회에서 인간이 사이코패스로 바뀌는 적은 그야말로 <적자생존>이라고 어느 뇌과학자는 얘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흘러갈수록 우리는 감정과 공감을 이성적으로 배워야 하는 일이 많아질 것이다. 소설 속 <루>처럼.. 그때가 오면 사이코패스라는 것도 정상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SF인지 순문학인지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이 작품은 존재에 대한 고민과 미래 기술의 윤리에 대한 부분을 생각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좋았다. 읽는 내내 두근대는 느낌이 좋았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답을 내렸을 때 내가 원하는 방향은 아니었지만 내면에 두 존재가 양립하고 있는 <루>가 둘을 모두 존중하는 모습으로 열린 결말을 내린 것 또한 사회가 나아가길 바라는 작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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