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서평+독후감)/소설

(서평) 잔류 인구 (엘리자베스 문) - 푸른숲

야곰야곰+책벌레 2021. 11. 10.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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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의 잔류 인구라면 지구가 멸망하여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책의 잔류 인구는 단 한 명의 노인을 얘기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철저하게 소외된 인물로 설정된 <오필리아>는 인생을 달관한 태도, 죽음 앞에서도 무덤덤할 수 있었다.

  우주 속에 존재하는 어느 별에서 외계인을 만난다면 누가 그들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를 하는 것보다 이해를 받는 것이 먼저라는 설정이 돋보이는 이 책은 푸른숲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미래의 어느 쯤이 될지 모를 시대에 인간은 행성을 하나의 공장으로 보는 것 같다. 이주민을 싣고 떠나 개척 하여 물건을 생산해 내는 컴퍼니는 신의 자리를 넘보고 있는 것일까? 처음 내려앉은 땅.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터전을 일구기를 40년 <오필리아>는 그렇게 콜로니 3245.12에 지냈다. 하지만 이 행성은 바다 태풍이라는 것이 불어와 홍수가 나기가 일쑤라 투자한 만큼의 이익을 볼 수 없었던 것 같다. 콤퍼니는 그렇게 이주민들을 태우고 다른 행성으로 떠날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70이 넘은 노인에게는 오히려 돈을 지불하라 한다. <오필리아>는 숲 속에 숨어 결국 떠나지 않았고 콤파니도 노인 한 명쯤은 이동 중 사망이라는 보고서로 마무리한다. 콤파니의 인간을 판단하는 기준이 생산력이라는 것은 지금의 지구가 가고 있는 아주 비인간적인 방향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혼자 남은 <오필리아>는 자유를 얻는다. 혼자 있을 자유. 아무 눈치도 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할 자유. 그곳에는 여전기 발전기가 동작했고 많은 음식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그것들을 유지 보수하는 법을 알았다. 그러는 어느 날 행성의 다른 위치에 또 다른 콤퍼니가 착륙하는 통신을 엿듣게 되는데, 그들은 모두 토착종에게 몰살당했다. 40년 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는 생명의 확인에 <오필리아>는 두려움이 생겼지만 바다 태풍이 몰아치는 날 우연히 나타난 그것들에게 비를 피하도록 도와주었다. 피곤은 두려움을 잊게 만드는지 그렇게 외계 생명과 한집에서 잠을 자고 보니 점점 두려움은 이판사판의 마음이 되도록 해 주었다.

  그들과 생활하며 그들과 소통을 시도하고 가르침을 주다 보니 그들과 우호적인 관계가 되었고 그들의 중요한 <수호자>가 되었다. 그때 즈음하여 일전의 착륙을 시도하다 죽은 사건을 계기로 외계 생명 연구팀이 도착하게 된다. 그녀는 그들 사이의 소통의 창구가 되어 주고 자칫 폭력으로 치달을 수 있는 사태를 잘 마무리해 준다. 인간 새로운 지적 생명체와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어느 한 노인의 무료한 듯 한 삶을 조명하며 서서히 글 속으로 안내하는 이 소설은 <오필리아>가 그들을 처음 만난 시점 그리고 외계 생명체 조사팀이 내려왔을 시점에 각각 긴장감과 재미를 준다. 사실 처음 150여 페이지는 조금 지루할 수도 있지만 그런 밋밋한 글이 좋았다. 그리고 그 많은 페이지에 할애한 <오필리아>의 성격은 나머지 250페이지를 읽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새로운 생명체와 맞닥뜨렸을 때에도 초연할 수 있는지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인간의 생산력으로 가치를 판단하기 시작하면서 노인이라는 단어는 그렇게 좋은 의미로 다가오지 않는다. 농업시대에는 지혜라는 것이 머릿속에만 있었고 기술의 발전도 느렸기 때문에 모든 대소사와 지혜는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있었다.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저장이 가능해지면서 그것을 빠르게 익히는 사람이 지식을 점령했고 적응이 느린 노인들은 차례로 소외되기 시작했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인간의 능력은 새로운 지식을 쫓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고 얘기하는 듯 하다.

  세상의 부조리함을 묻고 이해하는 동안에 생긴 마음의 넓이는 새로운 생명체를 맞이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오히려 소외되어 보이는 인물이었기에 그들에게 이해를 받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내어 보이지도 않았지만 가진 것을 내어주는 것에는 인색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도 그녀에게 <전달자>를 보낸 것이고 그들은 하나의 문명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쓸모가 있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작품은 그 무엇도 제대로 해내지 못할 것 같은 70세 노인의 행성 생존기를 통해서 그 답에 대해서 고민해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ps. 역자님의 대단함은 책 후반부에 여실히 드러난다. 분명 외계어 같은 문장이었을 텐데, 어떻게 찰떡같이 한글식 외계어로 바꾸셨는지 그 노고에 박수 쳐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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