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서평+독후감)/과학 | 예술

(서평) 헤르미네와의 이별 (야스민 슈라이버) - 아날로그(글담)

야곰야곰+책벌레 2021. 11. 15. 00:16
반응형

  에세이 같은 제목을 하고 있지만 과학 교양으로 분류되어 있던 이 책은 예상대로 단순 햄스터와의 티키타카를 얘기하는 책은 아니었다. 반려동물 햄스터의 죽음으로 인해서 생물의 노화와 죽음 그리고 죽음 이후의 상황들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자신의 슬픔을 과학적으로 묵묵히 풀어가는 이 책은 글담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생물학을 전공한 작가는 여러 동물들과 함께 살고 있다. 여러 동물 친구들의 죽음을 보아왔다는 것도 남다른 점일 수 있다. 반려 동물을 잃은 슬픔은 인간의 죽음을 대하는 슬픔에 대해서 결코 적지 않다는 점 또한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해 자신이 태어날 수 있었을 수 있다. 생물학적인 입장에서는 자연스러운 생태계의 현상인 것이다.

  죽음을 얘기하려면 우선 생명이 무엇인지를 정의 내려야 한다. 이스라엘 과학자 노암 라하브는 생명을 정의하는데 48개의 명제를 사용한 것을 보면 과학자의 입장에서 생명을 정의하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생명을 정의하고 나면 '생명은 언제 시작되는가?'라는 물음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단순 과학적인 문제만은 아니며, 종교적인 문제도 윤리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누가 똑 부러지게 얘기할 수 있겠는가?

  생명의 시작을 정의 내리기 어렵듯이 죽음의 순간을 정의 내리는 것 또한 어렵다. 호흡으로 죽음을 판별하던 시절에는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미약한 호흡을 하는 사람을 생매장하는 경우가 있었다. 지금은 뇌파를 이용한 뇌사를 죽음을 판명하는 기준으로 삼기도 한다. 하지만 이 또한 살아 있는 사람을 생매장하는 현대 과학의 부족함일 수도 있다. 과학이 발달하는 만큼 죽음에 대한 정의도 바뀐다. 

  죽음에 이르기 전 노화의 과정은 어떨까? 노화를 대하는 가설은 2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손상 이론>으로 우리의 세포들은 점점 손상되어 간다는 이론이다. 특히 염색체 끝단에 있는 텔로미어는 세포 분열할 때마다 짧아지며 결국에는 더 이상 분열하지 못하면 죽게 된다는 <텔로미어 가설>은 가장 주목받는 이론이다. 그래서 이 텔로미어를 늘리는 연구를 많이들 한다. 실제로 무한대의 생을 살 수 있다는 바닷가재의 텔로미어가 줄어들지 않는 기사도 접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 놀라운 생물들이 있는데 달팽이 중에는 1만 년 이상을 살아온 녀석들이 있고 백합 조개 중에도 500년 이상 살아온 녀석들이 있다. 이 달팽이는 인류의 진화를 다 봤을까?

  두 번째는 <진화론>이다. 생물은 살아남기 위해서 죽을 수 있도록 진화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 세대가 죽지 않고 무한대로 살아낸다면 그 동물은 멸종에 이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생태계의 순환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인간이 계속 그 고리를 부수고 있지만.. 실제로 빵효모에서는 식량이 줄어들자 아직 젊고 정상적인 상태의 효모들이 자기희생적 반응을 했다. 

  지구 상에는 정말 많은 생물들이 장수를 하고 있으며, 홍해 해파리의 경우에는 생명의 끝이 없다고 했다. 자기 분화라는 재생 능력은 인간도 가지고 있지만 이들만 탁월하지도 않으며, 곰벌레나 벌거숭이 두더지쥐처럼 몸의 생식 작용을 멈추거나 느리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 죽고 나면 어떤 일이 생길까? 인체가 제어권을 잃으면 세포 속의 각종 장치들이 마구잡이로 동작하여 <자가분해>를 시작한다. 세포 속의 미토콘드리아는 <베타 산화>를 계속하고 이런 과정에서 우리 몸의 소화액들은 자기 스스로를 분해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몸에 허점이 생기면 장 속에 있던 미생물들이 온몸으로 퍼져나가 몸의 부패를 도운다. 외부에서는 청소부라고 불리는 각종 동물들이 인체를 자연으로 되돌리는 일을 하게 된다.

  인간의 장례 문화는 문화적 종교적 특색이 있는데 이것은 생태계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리고 청소부라고 불리는 동물들에게도 치명적인 문제다. 시체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연으로 보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장례라고 생물학자다운 견해를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는 죽음이 몰고 오는 슬픔과 그를 대하는 마음 등을 다뤘다.

  생명의 순환 과정을 생각하면 죽음은 당연히 맞이해야 하는 일이며 나의 죽음은 누군가의 생명으로 이어질 것이다. 사람이 죽음이 두려운 것은 소유한 것이 있기 때문이라는 말에 조금은 수긍이 가지만 인간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무신론자인 작가는 허무하게 끝을 얘기하는 것보다 다음 세상에 대한 희망을 가지며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는데 무신론자인 나도 그럴까?라는 궁금점이 생기기도 했다. 다음 생이 있다고 믿을 만큼 종교를 믿을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햄스터의 죽음 통한 생명의 탄생과 죽음, 죽음 이후의 일 등을 얘기해 주었다. 작가가 햄스터 헤르미네를 얼마나 아꼈는지 느껴졌기 때문에 조금은 딱딱한 (나에게는 재밌는) 생물 수업이 조금은 스토리텔링 형식을 갖출 수 있지 않았나 싶었다. 생물학적 <노화>와 <죽음>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된 시간이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