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은 인류가 그것을 인지하기 전부터 존재해 왔을 것이다. 빛이 닿지 않은 모든 것은 검정이었다. 인류가 태동부터 검정과 함께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밤이 되면 어둠이 내려앉았고 하늘은 까만 우주가 펼쳐져 있었다. 행여나 찾아낸 동굴 속에도 검정은 늘 존재해 왔다. 검정은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해 왔다.
검정의 의미와 미술사에서의 검정이 두드러지는 작품을 소개하는 이 책은 미술문화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중세 시대까지만 해도 검정은 구하기 쉬운 색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동굴의 벽화는 검정으로 되어 있는 것들이 많다. 검정은 모든 색의 결합이 가져다주는 원초적인 색이어서 그랬을까 인류가 세월을 거듭할수록 그 의미는 다양해져 갔다.
중세의 아리스토텔레스가 '모든 색은 검정과 하양에서 비롯된다'라고 주장한 반면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검정은 색이 아니다'라고 단언하기까지 했다. 이런 추대와 추앙은 사회적 의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검정은 죽음, 불행을 의미하기도 했지만 금욕을 상징하기도 했다. 근래에 이르러서는 권력, 고급스러움 때로는 관능의 의미까지 가지게 되었다. 검정은 단조로워 보이는 색이지만 다채로운 의미를 가졌다. 모든 색을 뒤섞을수록 검정에 가까워지듯..
책은 검정에 관해 꼭 봐 두어야 하는 18편의 작품과 의외의 작품 19편을 소개한다. 눈에 확 들어오는 작품도 있는가 하면 이해하기 힘든 추상적인 작품도 있었다. 검정의 의미의 변화와 작품에서의 의미를 읽다 보면 전시회를 한 바퀴 돈듯한 뿌듯함과 충만함을 느낄 수 있다. 모든 페이지는 두텁고 꽤 좋은 질감의 종이를 사용하였고 인쇄된 그림은 나에게 만족스러움을 주었다.
흑연과 다이아몬드는 모두 탄소로 이뤄져 있다. 그럼에도 하나는 검정 하나는 투명하다. 과학적으로 보면 전자의 결합 상태 때문이지만 검정과 하양은 같은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빛을 합하면 하양이 된다. 모든 색을 합하면 검정이 된다. 너무 단조로운 무채색이라는 평을 듣지만 그 속의 다채로움이 있다. 검정으로 표현은 다채로운 작품을 이 책을 통해서 감상하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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