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서평+독후감)/소설

완전한 행복 (정유정) - 은행나무

야곰야곰+책벌레 2021. 11. 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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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 2015년 개봉한 영화 <베테랑>에서 극 중 형사 서도철이 했던 대사다. 가오는 우리나라의 체면이나 자존심 같은 뜻을 가지고 있으나 그 뉘앙스가 미묘하게 다른 느낌이 있어서 그냥 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 최근 여러 SNS에서는 행복해 하는 모습을 담은 사람들이 많다. 자신의 부를 표출하거나 멋진 몸매를 뽐내는 것은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들은 너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과연 SNS에서 보이는 삶 그대로를 살아가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그런 행복을 만들기 위해서 현실에서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자존감과 자기애 사이의 경계는 정말 아슬아슬하다. 멘탈을 지키기 위해 억지로 자존감을 끓어 올리는 행동을 많이 하다보면 자신도 모른채 나르시시스트가 되어 있다. 우리는 나르시시즘의 무서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정유정 작가의 <완전한 행복>은 나르시시스트의 행복에 대한 집착은 어떤 공포를 가져오는지 얘기해주고 있다.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껴질 정도의 환경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자신을 위로하고 사랑해주는 것이다. 그런 위로가 과보호가 될 때 인간은 나르시시트가 될 수 있다. 작품 속 인물 <유나>는 자신의 행복을 완벽하게 만드려 하는 나르시시스트다. 그녀가 추구하는 행복의 공식은 불완전한 것들을 모두 제거하는 뺄셈이었다. 그러나 행복은 완전할 수 없다.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조금의 불행도 함께 존재해야 한다. 우리는 행복을 덧셈이라고 말한다. 행복은 크기보다 회수가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소확행을 얘기하고 웃을 일을 자주 만들려고 한다. 행복의 공식이 뺄셈이라면 마지막은 '0' 되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녀는 그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정유정 작가는 자신이 미스터리 작가가 아니라 스릴러 작가라고 했다. 스릴러는 범인이 누구인지 알려져도 상관이 없다. 주인공이 사느냐 죽느냐에서 오는 공포를 잘 이끌어가면 되는 것이다. 이 작품은 그야말로 스릴러다웠다. 시작부터 묘사되는 <유나>는 무심한 듯 오리를 손질하고 딸 <지유>를 완벽하게 압도하고 있다. 영혼 없는 듯한 딸의 모습은 도입부를 더 소름 돋게 만든다. 그렇지만 지유 속에 표현되는 <요망한 생쥐>라는 것으로 엄마에 대한 반항의 여지를 주며 앞으로의 일 또한 암시하고 있다. 작품은 결말을 예상할 수 있었지만, 주위에서 충분히 일어날 법한 일이어서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모든 걸 꿰뚫고 있는 듯한 <유나>의 행동에 <지유>와 <재인>이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서둘러 책장을 넘기게 되었다. 행복의 가치가 엄마와 달랐던 딸 <지유>의 행동으로 모든 실마리가 풀리게 되는 것은 같은 사회에서도 다른 성향의 사람이 될 수 있음을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더불어 깊지 않은 늪, 그리고 그 건너의 계곡에 절벽이 있다는 설정은 삶의 질곡을 건너 결국 최후를 맞이하는 <유나>의 삶을 또 다른 방식으로 얘기하고 있게 아닌가 싶었다. 유독 시끄럽게 울었던 되강오리의 소리는 그런 <유나>에게 보내는 누군가의 외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최근 사회는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고도화되었을 뿐 아니라 빠른 판단력도 필요하게 되었다. 이런 사회에 적응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분명 존재한다. <사이코패스 뇌과학자>를 저술한 제임스 팰런은 책에서 사이코패스로의 진화는 인류의 당연한 방향이라고 했다. 이런 빠른 사회에서 '적자생존'하기 위해서는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이성에만 의존한 판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적응하지 못한 자는 자신을 위로하다 '나르시시스트'가 된다. 둘 다 사회적으로는 큰 고민을 가져다준다.
우리는 사이코패스 혹은 나르시시즘으로 나아가는 인류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나르시시즘>, <사이코패스>는 거부한다고 가능하지도 않을 것 같다. 공동체를 위한 교육에 대해 고민하고 행복은 뺄셈이 아니라 덧셈이라는 것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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