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디 심프슨이라는 소녀의 강간 사건으로 운을 떼는 이 소설은 너무 맑은 제목과 표지에 에 반전이라도 주는 스릴러일까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만했다. 우리 사회에서 추악한 범죄로 분류되지만 어쩌면 생각보다 흔하게 일어날지도 모르는 사건을 중심으로 화자가 기억하고 회상하고 서술한다.
화자의 10대 시절의 사랑과 철없음 그리고 허세와 더불어 이제는 30대가 된 그의 자전적 반성을 풀어내는 이 책은 작가정신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리뷰에 앞서서 잠깐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영미 소설에서 묘사되는 10대의 모습이 우리가 받아들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부분들이 있다. 음주는 물론이거니와 대마초나 마약을 서슴지 않는 모습을 보면 "막장이네"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더군다나 이 소설에 주된 사건은 "강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혐오에 대한 감정을 추스르기 힘든 독자는 아마 제대로 읽어내지 못할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나도 100페이지까지 "뭔 이런 소설이 있담"라고 얘기했을 정도니까.
화자가 열렬히 사랑하는 린다 심프슨은 육상부의 스타였다. 그런 그녀가 어느 날 성폭행을 당한다. 열쇠도 문 밖 비밀 장소에 대충 놓고 다닐 정도로 평화롭고 범죄를 상상하기 힘든 마을이었다는 점에서 동네에는 시끌벅적 해진다. 동네 남성들은 차례대로 용의자가 되지만 결국 미제 사건이 되고 만다. 화자는 범죄자를 잡기 위해서 혼자 고뇌한다.
미스터리 스릴러의 분위기는 중반쯤 들어서면 허세 가득했던 사춘기 소년들의 모습을 회상하게 해 준다. 사랑이라고 인식하기 전에 성에 대해 눈의 뜨고 잘못된 방식인지 모른 채 열렬히 집중하기도 한다. 상대의 아픔을 해결해 내겠다는 허세로 상대에게 더 상처를 주고 좌절하고 다시 일으서는 모습을 그려낸다. 이쯤에 들어서면 화자의 고백을 바탕으로 한 리얼리즘 소설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단지 그 사건이 너무 충격적이었던 것이 었을 뿐이다.
그 애가 안타까웠고, 그 애 때문에 마음이 무너졌다.
이런 짓을 한 누군가에게 화가 났고,
이제야 이 낙서를 알아보았다는 게 미안했다.
그 애를 다시 만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면서도,
그 애들 비웃고 싶은 마음,
날 사랑하지 않더니 꼴좋다 같은 잔인한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소설에서는 사랑과 집착 그리고 고통에 대한 기록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그리고 지난 시절에 대한 반성도 함께 들어 있고 어떻게 살아가는 게 좋은 건 지를 생각하게 만든 다음 어떻게 해야 마음을 높아줄 수 있는지를 얘기한다. 화자는 첫사랑이 그 일을 당하는 날에도 나무 위에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날은 불길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녀를 구할 생각은 못한 채 도피해버렸다. 그런 자신에 대한 자기혐오가 어떻게든 범죄자를 잡아내고야 말겠다는 집착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첫사랑 린다에게는 덮고 싶은 사실을 계속해서 파헤치는 그가 혐오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행복하기 위해 진실에 덮어버리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 사실 일지 모르겠다.
"진실이라는 게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야?"
"진실이란 그보다는 더 복잡한 문제가 아닐까?"
글 중간에는 태풍 카트리나 얘기가 잠깐 나온다. 작가는 그 얘기를 쓰기 위해서 수개월 동안을 노력했다고 했다. [카트리나는 미국에 엄청난 재앙을 가져다준 태풍 중에 하나다.] 베턴루지 사람들과 뉴올리언스 사람들 사이에 사소했지만 달갑지 않았던 대화 속에 우리의 즐거움이 타인의 즐거움보다 하찮아 보이는 모습에서 우리의 고통이 타인의 고통보다 사소해 보이는 괴로움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했다. 모든 고통은 정당하다. 고통은 경쟁이 아니니까라는 작가의 말에서 이 작품에 얘기하고자 하는 바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고통이 경쟁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결국 모두 패자가 되어 있을 것이니까.
화자에게 죄가 있을까 없을까 라는 것보다 화자의 울분이 조금은 이해가 가서 좋았다. 그 옛날 인터넷이며 휴대폰이 없던 시절 식구들이 모두 잠든 시간에 전화를 해야 했던 그 분위기도 추억을 느끼게 만들었다. 30대가 되어 만난 첫사랑은 윤종신의 <오래전 그날>의 노래 가사처럼 좋은 남자를 만났고 그때의 아픔을 추억으로 만들며 자신을 구원해 냈다. 하지만 정작 화자는 그런 모습에서 정직하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에서 혐오를 느낀다. 화자는 죽은 누나의 일기장에서 그날의 범인을 이제는 알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진실은 모두 파헤쳐야 하는지 다시 한번 고민스러운 대목이다. 누나의 일기장을 읽으며 자신 또한 소중한 존재임을 알게 된 후 화자도 스스로를 구원하게 되며 글을 마무리된다.
이 책의 말미에는 작가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책에서 오는 이국적인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더라도 책을 이해하기에 조금 어려운 측면이 있었는데, 작가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왜 작가는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갔는지를 알 수 있었다. 화자의 추억에 대한 단순한 얘기이기도 했고, 사건으로 말미암은 화자의 가슴속 깊은 죄의식을 풀어가는 과정을 담은 글이기도 했다. 그리고 사회에 대해 짧고 굵은 메시지도 주었다.
아름다운 것을 인식하는 것과 포식자가 되는 것 사이의 경계는 아주 아슬아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내면에 이상한 모순을 품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각자의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충만한 삶을 살고 타인에게 영감을 주고
공감을 주고받으면서요.
스릴러 싶으면서도 성장 소설이며 외설적이면서도 생각을 하게 만드는 묘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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