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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코로나19와 주말부부

야곰야곰+책벌레 2021. 9. 8.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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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집에 있는 것을 좋아했다. 분명 어렸을 때는 시골에 살아서 밥 먹고 잠잘 때나 집에 있었던 것 같다. 게임을 시작하고부터였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컴퓨터를 하고 나서부터 였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독서나 프라모델 등 취미 대부분이 집에서 아기자기하게 할 수 있는 것들이어서 그런지 딱히 나갈 일도 많지 않았다.

  성인이 되고 많이 돌아다녔을 때가 있었는데, 사진을 취미로 했을 때다. 그때는 풍경을 주로 찍었기 때문에 우선 나가야 사진을 찍을 수 있었기 때문에 참 많이 돌아다녔다. 그 당시에 아내와 연애를 해서 우리는 만나면 우선 출사를 갔다. 풍경에 인물이 더해졌고 사진 취미답게 일명 백통이라 불리는 흰색 렌즈와 우람한 삼각대로 우리들 사진을 찍고 했었다. 그때 똑딱이 카메라와 바람만 불면 쓰러질 것 같던 장비를 가진 남성들의 눈총을 좀 많이 받기는 했지만 즐거웠다.

  첫째가 태어나서까지도 나는 사진이라는 취미를 꽤 즐겁게 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 첫째도 사진이 많다. 둘째가 태어날 즈음엔 너무 바빠서 카메라를 손에 쥘 일이 줄었다. 그래서 둘째는 첫째보다 사진이 압도적으로 적다.

  업무가 산처럼 쌓이고 팀장이라는 것도 하고 하니 집으로 업무를 가져오는 일도 많아지고 주말에도 수시로 전화가 와서 집에 있는 것이 많아졌다. 사실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만 품을 뿐,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았다.

아내

  아내는 자기 생각이 확실하면서도 이해심이 넓은 편이다.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사람인데 육아를 위해서 집에서만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첫째를 기를 때만 해도 하나여서 안고 여기저기 같이 즐겁게 다녔다. 혼자 다니는 재미도 있었지만, 조그마한 녀석 하나를 안고 다니는 재미도 나름 있었던 모양이다. 첫째랑 다니는 즐거운 모습을 자주 보내주곤 했다.

  둘째가 태어나니 아내의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 일단은 둘째가 너무 크게 태어나서 아내의 골반이 말이 아니었기도 했거니와 둘은 아무래도 같이 다니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조금은 자란 첫째 때문에 일정을 첫째에 맞춰야 해서 둘째는 본의 아니게 많은 것을 봤던 것 같다. 얕지만 아주 넓은 지식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이 녀석은 떼쟁이다. 자기 비하가 심하다. 귀엽지라도 않았더라면 어쩔 뻔했냐고 아내와 나는 종종 얘기한다.

  천사 같은 아내도 이 녀석 때문에 종종 폭발한다. 아내는 육아를 통해서 해탈해 간다. 주말에 집에 있으면 깨어있는 동안 입을 멈추지 않는 녀석들 때문에 머릿속이 엉켜 폭발해버리고 만다. 아내는 아마 부처이거나 보살이었을 것이다.

주말부부

  팀장을 더 했다가는 커리어도 잃고 건강도 잃을 것 같아서 평소 가깝게 지내던 실장님이 내려준 동아줄을 움켜쥐었다. 그것은 주말부부가 되는 것이었지만 그게 더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잘못했다가는 중국 출장 가서 몇 달을 돌아오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유로 아내를 설득했다.

  지금까지 주말부부는 매일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을 빼면 괜찮았다. 주말은 항상 쉴 수가 있었고, 업무에도 나름의 여유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이 좋았다. 무엇보다 팀장이 가지는 어마 무시한 문서 작업에서의 탈출이 좋았다. 체계적이지 않은 회사라 쓸데없는 문서 작업이 너무 많다. 게다가 포맷도 없어서 인포 디자인도 해야 할 판이다.

  아내의 또 한 번의 배려로 이런 상황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래서 항상 감사하고 고맙게 생각한다. 주말에 가면 어떻게 더 잘할까를 생각한다. 근데, 편도 3시간 30분 운전을 하고 나면 멀쩡했던 몸뚱이도 피곤에 이겨내지 못한다. 나름 이것저것 해보려고 하지만 이내 축 쳐지고 만다. 그런 게 안쓰러운지 아내는 이전보다 더 잘해주는 것 같아 고맙다. 주말부부 아닐 때는 주말 요리는 거의 내 당번이었는데...

마음의 환기

  와이프는 햇볕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집에서 육아를 하더라도 가끔씩 나들이를 가는 것을 좋아한다. 그것은 비단 나의 아내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기 전까지는 항상 함께 했기 때문에 개인 시간이 나질 않았다. 유치원이나 학교를 다닐 때 잠깐 짬날 정도지만 집안일이라는 게 그렇게 만만치 않기 때문에 그걸 하다 보면 아이들이 돌아올 시간이 되었다. 예전에 아줌마들이 운동이라도 하려면 집안에 개판이 되어도 놔둘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하셨는데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최근에서야 첫째가 제법 자라 둘째와 함께 한두 시간은 함께 있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일주일에 두 번 요가를 다녀오는 것이 아내의 좋은 마음의 환기가 되어주었다. 그런 아내에게 잘한다고 박수 쳐 주었다. 그리고 일본어 공부도 다시 해보라고 책을 사주었다. 하지만 애들의 키운다는 것은 보통이 아닌지라 아내는 여전히 아주 가끔씩 폭발하곤 한다.

  오늘 아침, 아내는 갑자기 저기압이었다. 뭘 잘못했는지 감을 못 잡은 나는 날씨가 너무 좋은데 집에만 있는 내가 잘못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예전 같으면 같이 삐졌을 텐데.. 그 마음의 무게를 알 것 같아서 그냥 애교(?)를 좀 부렸다. ( 중간에 한번 정색도 했다.. 나도 사람인지라... )

  내가 매일 밖에 나가 있어서 주말에 집에서 가족들하고 있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아내는 안다. 그래도 아이들이 작을 때 소소하게나마 추억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있는 것이다. 아마 코로나로 인해서 그런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마저 잊어버린 것 같다. 냇가에 발이라도 담그더라도.. 길가다 커피숍에서 와플이라도 먹더라도 가볍게 산책을 해보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은데.. 그냥 코로나 핑계로 집에서 책만 읽고 있었던 것 같다.

  조금은 가족들과 행복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봐야겠다. 최근에 너무 인생 2막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고 있었나 보다. 마음의 여유가 좀 있어도 되는데 너무 나를 죄고 있었던 것 같다. 나의 하루하루도 중요하지만 가족과의 하루하루도 중요하다는 것 잊지 말도록 자주 상기시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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