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서평+독후감)/소설

나를 보내지 마 (가즈오 이시구로) - 민음사

야곰야곰+책벌레 2021. 8. 6. 12:22
반응형

  앞서 읽은 책들과 마찬가지도 이 책 또한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은 채로 이야기를 적어 간다. 굉장한 질문을 아주 잔잔한 문체 속에 숨겨두는 작가의 스타일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책은 굉장히 나를 힘들게 했다. 굉장히 우울한 주제이면서도 너무나도 담담하게 적혀있는 글자들이 더 슬프게 했다. 표지는 아주 시원한 새파란 색인데 그곳에는 우울함이 묻어 있다.

  클라라와 태양에서처럼 작가는 주인공의 존재들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 중간중간 드러내는 '기증'이라는 단어와 '근원자'라는 단어에서 어렴풋이 클론에 대한 얘기임을 알아챌 수 있다.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비인간적인 현실로 다가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체세포 분열로 특정 장기를 만들어낼 수 없음을 자각한 인류는 장기 이식만을 위한 클론 양성소를 만든다. 가진 자들을 위한, '사육'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그럴 곳을 인간은 만들게 된다. 클론을 인간적으로 취급하지 않는 않게 바라보는 그런 세상이 어떻게 오게 될지는 상상이 가지 않지만 자신을 위해서라면 뭐든 저지르는 인간들을 보면 기술의 발전은 곧 이런 윤리적 문제에 다다르게 될 것이다. 그것은 가진 자의 소망일 테니까.

  더 슬픈 것은 그런 '장기기증'을 당연한 사명으로 받아들이고 죽음이라는 것에 대항해 보지 못하고 무덤덤하게 죽어가는 클론들의 모습이다. 잔인한 글, 단어 하나 없이도 이렇게 잔인한 상상을 들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소름 돋는다. 종막에 다다르서는 메스꺼러움을 느낄 정도로 페이지를 넘기기 쉽지 않았다. 글의 내용은 무덤덤했는데 그런 전개가 더 슬펐다. 주인공 중 한 명이 절규하며 소리를 치는 장면이 더 인간적이었다. 작가는 클론을 끝까지 인간적일 수 없게 만들어서 슬픔을 더 극대화하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이런 스토리 전개가 가즈오식의 문체임을 지난 몇 권에서 알 수 있었다.

  이제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클론'이라는 기술과 질병 처리를 위한 '클론 사육'에 대한 비인간적이면서 비윤리적인 상황에 대해서 작가는 질문하고 있다. 일어나지 않을 것 같지만 일어날 것이고 우리는 클론의 인격에 대해서 어떻게 마주하게 될 것인가. 책 속의 선생님들처럼 클론들의 영적 능력을 대중에게 내보임으로써 인간임을 증명할 것인가? 인간보다 더 완벽하고 뛰어난 클론의 탄생은 일어날 수 있으며 그것은 인간에게 공포로 다가올 수도 있고, 그것은 '말살'이라는 더 큰 재앙으로 남겨질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들이 인격을 갖는 것을 철저히 배제하게 될 것이다.

  네 번째 장기기증은 클론으로서 완결이면서도 죽음이다. 희망이 모두 사라진 상황에서 담담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이들의 모습을 봐내야 비로소 책을 덮을 수 있다. 클론이라는 색을 덜어내면 인간의 성장 스토리가 될 만큼의 이야기이다. 결말은 비극적이더라도 인간의 이야기로 충분하다. 그곳에 클론을 색을 더하여 슬픔을 극대화한 것은 클론도 곧 인간이다라는 작가의 슬픔이기도 한 듯하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