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서평+독후감)/소설

녹턴 (가즈오 이시구로) - 민음사

야곰야곰+책벌레 2021. 8. 9.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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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다 읽고 역자의 후기를 읽고 나서야 '아, 이 책은 소설집이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5편의 단편 소설들은 미묘하게 이어지면서도 이어지지 않았다. 어떠한 동요도 일어나지 않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글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흘러가는 대로 적어내는 작가의 글은 기승전결이 무색한 무색무취의 문장들의 집합이다. 짧은 글에서 무언가를 느껴내려면 더없이 집중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번 책은 많이 싱거웠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장편들은 미묘한 파동이 그나마 길게 이어져 있어서 알아챌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면 단편들은 그런 부분이 많이 어려웠다. 다른 작가들의 소설을 초장이나 와사비 장에 찍어먹는 회라고 하면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은 회만 씹어 단맛을 느껴내야 하는 작품 같다. 그중에서 '녹턴'에 실린 이 단편들은 그 난이도가 최고다.

  아주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들로 시작해서 그저 평범한 이야기로 마무리되는 다섯 편의 소설은 "일상은 99.9%가 평범하다" 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사실 매일 쳇바퀴 같은 인생이 무료해서 우리는 다이내믹한 콘텐츠를 원한다. 그럼에도 작가는 "매일매일 노력해서 만든 것이 쳇바퀴다"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려고 하듯이 평범함을 정말 조미료 하나 뿌리지 않은 듯한 문장으로 적어낸다. 우리 인생은 그렇게 극적이지 않듯이 말이다.

  다섯 편의 작품 중에서는 <녹턴>이 가장 다이내믹하고 재미가 있다.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부족한 외모 덕분에 성공하지 못한 음악가가 아내의 불륜의 대가로 성형수술을 하게 된다. 수술을 마치고 회복을 하는 호텔의 옆방에서는 유명이었던 린다라는 여인이 투숙하고 있었고 두 사람의 조금은 어이없고 우스꽝스러운 사건들이 재미를 더해 준다. 게다가 나머지 네 작품들에 비해서 메시지를 조금 직접적으로 전달한다. 책 전체로 보면 이 작품이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도 있다.

그중 몇몇은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했을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약간의 인정은 받을 만한 자격이 있지요.
...
당신만큼 운이 좋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출세를 하기 위해 몹시 힘들게
노력한다는 걸 당신은 모르고 있어요...

  남자 주인공은 능력있지만 성공하지 못한 자를 대변하고 린다는 능력이 조금 부족했지만 성공한 사람을 대변한다. 남자는 능력이 없는 데 성공한 사람들을 폄하하지만 린다는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지 못한 사람들의 아픔을 얘기한다. 성공은 사실 재능보다 운이 더 많이 작용할 수도 있다. 능력주의를 얘기하는 지금의 시대에도 운은 언제라도 작동한다. 운칠기삼이라는 얘기도 있지 않나. 

나는 세상이 결국 그렇게까지 불공평한 건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나처럼 축복받지 못한 사람에게도 기회가 있다는 걸,
양지에 자리를 잡을 수 있다는 걸,
평범함 삶에 만족할 필요가 없다는 걸 말이에요.

 자기 합리화라고 얘기할 수 있지만,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을 불공평한다라고 생각하면 재능이 조금 부족해도 성공할 수 있다는 세상은 평범하다는 논리. 조금은 억지스럽기도 하지만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작품이 양념을 하지 않은 국수를 먹은 듯한 기분일 지도 모른다. 시작부터 끝까지 평범하고 마지막까지 평범하다. 무언가 기대할만한 사건이 일어날 것 같으면서도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다. 우리의 특별할 것 같은 인생 같은 소설이다. 그 속에서도 계속 특별함을 찾으며 읽게 된다. 우리의 특별할 것 없는 삶도 그렇게 계속 특별함을 찾으면서 살아가는 게 아닐까. 투명할 정도로 하얀색인 이 작품은 그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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