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서평+독후감)/소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마쓰이에 마사시) - 비채

야곰야곰+책벌레 2021. 7. 27. 09:38
반응형

  어쩌다 들른 어느 분의 인스타그램에서 너무나 매력적인 제목과 그에 잘 어울리는 표지의 책이 있었다. 그분의 피드는 "여름이 가기 전에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고 되어 있었다. 자신은 여름이 오면 매번 꺼내 들고 읽는다고 했다. 그 정도의 추천 사면 책이 나쁠 리가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 가지고 싶은 제목을 하고 있었다. <화산의 기슭에서>에서라는 다소 밋밋한 원제를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로 번역한 역자의 센스가 주요한 것이기도 했다.

  구매하고 얼마 있지 않아서 김영하 작가가 7월의 도서로 선정하면서 책은 순식간에 인기도서가 되어버렸다.

  서정적인 제목답게 이 책은 한나의 계절 동안의 일을 그림을 그리듯이 아름답고 세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다이내믹한 오락적 요소를 최대한 빼고 처음부터 끝까지 잔잔하게 이어가고 있다.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읽고 있자면 은은하게 전해오는 파동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매력이다. 반대로 얘기하면 조금만 산만해지면 몰입하기가 쉽지 않기도 하다.

  한 여름동안 별장의 사무소로 이동하여 합숙하며 일을 해나간다는 것은 요즘 직장인이 보면 엄청 갑갑한 일일 수는 있으나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라면 분명 낭만적인 것이기도 했다. 나무들 속에서 나무를 이용하여 설계를 한다는 것이 나무와 동화되어 있다는 느낌을 줘서 좋았다. 소박하지만 사용자의 편함에 맞춰진 설계를 하는 무라이 건축사무소답다.

나눗셈의 나머지 같은 것이 없으면 건축은 재미가 없지.
사람을 매료시키거나 기억에 남는 것은 본래적이지 않은 부분일 경우가 많거든.
그 나눗셈의 나머지는 계산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야.
완성되고 나서 한참 지나야 알 수 있지.

  책의 이야기는 정말로 느리다. 그런 시간의 사건을 400p가 넘는 지면에 옮겨 적었다. 문장을 얼마나 부드럽게 적어내려고 했는지 보인다. 묘사나 은유를 하는 문장에서 감탄을 할 때가 많다. 보통의 글이 설명한다고 치면 이 글들은 그려내고 있다는 느낌이다. 

마리코 옆에 앉아서, 사랑이니 당신의 눈이니 하는 노래를 듣고 싶기도 하고,
그래서는 몸 둘 곳이 없어질 것 같은 두 마음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마리코에서 마음이 가는 주인공의 묘한 심리를 표현한 대목에서 대담하지 못한 주인공의 꽁기 꽁기한 마음을 표현했다.

잘 다루지 못하는 새 노를 손에 들고,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채, 나는 작은 보트를 젓기 시작하고 있었다.
곁눈질하다가는 금방 밸런스를 잃고 말 것이다.
보트는 어느 틈 엔지 온화한 만을 빠져나가 망망한 큰 바다의 일렁임 속에서
어설프게 앞으로 나아가려 하고 있었다.

  처음 자신이 책임지고 일해야 하는 업무를 받았을 때의 마음의 표현이다. 정말 시적이면서도 눈에 그려지는 그의 속 마음을 온전히 알아챌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일을 대하는 무라이 선생의 자세에 대해서 일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집이라는 것은 튼튼하고 편리해야 하지만 재앙이 닥쳐서 모든 집에 무너졌을 때 홀로 남겨져 있다는 것은 요새이지 집은 아니라는 표현도, 사람이 잉태되었을 때 수많은 세포 분열 속에서도 손가락이 먼저 만들어지는 것은 전체적인 설계 속에서도 디테일을 고려해야 한다는 생각도, 그리고 협동이라는 일에 대한 생각도 모두 큰 울림으로 남았다.

도서관 설계 같은 것은 나 혼자 하다가는 오 년이 지나도 안 끝나.
내가 자네들한테 맡기는 것도, 자네들이 나한테 맡기는 것도 협동이라는 거지.
제자니 보스니 하는 상하 관계하고는 별개야. 신뢰지.
그렇지 않으면 같이 일할 수 없어.

  나는 정말로 죽기 살기로 억지 부릴 수 있을까. 나의 신념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말을 빌려서만 얘기하고 있지 않을까. 내가 다른 사람의 말에 밀리고 있지는 않을까. 책 속의 무라이 선생도 여러 사람들에게 큰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지만 책을 읽은 나에게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어른 느낌의 나의 여름방학 이야기 같았지만 마음의 평온함도 작은 울림도 가진 아름다운 책이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