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서평+독후감)/소설

클라라와 태양(가즈오 이시구로) - 민음사

야곰야곰+책벌레 2021. 7. 22. 23:42
반응형

  처음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귀여운 제목과 표지 디자인에 책을 펼치면 아름답고 감동적인 동화가 툭하고 튀어나올 것 같았다. 클라라가 로봇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기까지 꽤 많은 페이지가 필요했다.

  매장의 티셔츠들이 서로 얘기하고 있나? 아이들은 공룡 무늬 티셔츠를 좋아하니까.. 그리곤 매장 매니저는 여기저기 옮겨다 준다는 글을 읽고는 봉재 인형인가? "태양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니 인형에서 생명을 주는 설정일 수도 있을 거야.."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너무 동화같은 문장들에 나는 감히 클라라가 로봇일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책을 덮을 때까지 클라라는 빨간 원피스를 입고 해바라기 같은 얼굴을 하고 있을 것 같았다. 항상 따뜻한 마음으로 인간을 관찰하고 이해하려 하는 클라라의 행동들은 인간이 잃어가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전에는 사람이 자발적으로 외로움을 선택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외로움을 피하려는 소망보다 더 강력한 힘이 있을 수 있다는 걸 몰랐어요.

  이 아름다운 소설은 조시와 클라라의 감동적인 이야기 속에 뒤틀려버린 세상의 부조리함을 말하고 있다. 조시를 통해서는  향상에 대한 인간의 욕구를 보여주고,  클라라를 통해서는 감성적인 인간 본연의 모습에 가까워지고 있는 로봇을 모습을 보여 준다. 작가는 이런 두 존재의 슬픔과 사랑의 모습으로 인간과 로봇의 이상적인 관계를 얘기하고 싶었을까. 인간다움을 버리면서까지 향상을 바라고 로봇에게는 인간다움을 요구하는 모순된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읽는 동안 메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스토리가 워낙 아름답기도 하고 탄탄하기도 해서 그 속에 몰입되어 버렸다. 조시가 건강하기를 바랐고, 클라라가 부서지지 않기를 바랐다. 어느 한쪽이 망가져서 다른 한쪽을 구하는 희생의 스토리가 아니기를 바랐다. 클라라를 홀로 두는 조시가 미웠고 태양에게 얘기를 가는 장면에서는 조마조마 했고 클라라를 도와주는 릭의 모습에 안도하기도 했다. 클라라가 태양을 보고 2층으로 달려가는 장면에서는 나도 함께 조시가 건강해지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랐다. 

  책을 덮고 나서야 '클라라가 로봇이었지'라고 생각할 정도로 클라라는 인간에 가까울 정도로 표현되고 있었고, 더없이 아름다운 이야기였지만 무서운 이야기이기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 뒤에 이렇게 무서운 메시지를 던지고 있었던 것일까. 그제서야 이 책이 SF소설일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전자 공학이 가져다 줄 미래는 '더 향상될' 수 있는지에 따라 새로운 계급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리고 클라라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상상하며 로봇에게 '감정'을 만들어줄지도 모르겠다. 로봇에게 '감정'을 심는 것은 잔인한 일인 동시에 무서운 일이다. 애완동물에게도 학대를 가하는 인간이 로봇에게 그러지 않으라는 법도 없고 로봇 또한 항상 다정할 거라는 보장도 없다. 그리고 로봇이 인간의 자리에서 소중한 사람을 대체하는 연극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상상하기에도 섬뜩한 일이다.

하지만 저는 카팔디 씨가 잘못된 곳을 찾았다고 생각해요.
아주 특별한 무언가가 분명히 있지만 조시 안에 있는 게 아니었어요.
조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카필디 씨가 틀렸고 제가 성공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책의 말미에 클라라는 옛 매니저와의 해후에서 자신이 조시를 완벽하게 연기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나중에서야 비로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얘기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존재의 가치까지 알아본 클라라의 말은 작가가 진정하고 싶었던 얘기가 아니었을까.

  태양은 모든 생명을 자라나게 하고 살아가게 하는 본질적인 존재일지도 모른다. 사회 시스템에 지배를 받으며 끊임없는 경쟁에 내몰리며 식어가는 따뜻함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때가 아닌가 싶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