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미국의 근대사와 엮여 있는 두 여성의 삶을 서술한 이 책은 문학수첩에서 진행하는 서평에 참여하면서 나와 인연이 닿았다. 소설을 최근에 들어서야 조금씩 그 양을 늘려가고 있는데... 이 책을 처음 받아 들었을 때는 잠깐 후회도 했다. 600페이지에 육박하는 장편소설이었기 때문이다.
샤프롱은 주인공의 이름일까라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Chaperon(샤프롱)은 사교계에 나가는 젊은 여성의 보호자를 의미했다. 사실 두 여성의 이야기라고 적었지만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주인공은 '샤프롱'을 했던 '코라'의 이야기인 것이 더 맞는 것 같다.
무대가 미국이였고, 미국의 역사를 잘 알지 못하는 나에게 가끔씩 여러 번 읽어야 하는 불편함은 있었지만 두꺼운 책이 무색하게 금방 읽어버렸다. 처음부터 신여성으로 나오는 '루이스'는 파란만장한 삶으로 묘사되지만 사실 '코라'에서 지대한 영향을 주는 조연 정도의 역할이었던 것 같다.
요즘 세대는 문제가 있어. 중요한 일에는 도무지 신경을 안 쓰잖아.
우리가 젊었을 땐느 투표권을 원했지.
사회 개혁도 원했고, 요즘 여자들은 그저...
거의 벌거빗은 꼴로 돌아다닐 뿐이야.
남들이 빤히 바라보라고, 다른 생각은 전혀 안 하는 것 같아...
세대적 갈등은 1970년대를 관통한 우리나라나 1920년대를 관통한 미국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세상의 사람의 심리보다 빠르게 변화하게 되면 갈등은 으레 생기기 마련이다. 과거 여성상의 상징인 '코라'와 신여성의 상징 '루이스'와 만남과 갈등에서 조금씩 자신의 틀어 깨나 가는 '코라'의 심리적 변화는 이 책을 읽는 백미다.
가축 방목장 옆에서 자란 사람에게는 거기서 나는 냄새가 그냥 공기처럼 느껴지는 법이야.
우리가 알지도 못한 채 어떤 악취를 들어마시고 있을지도,
그러니까 내 이야기를 잘 들어야 돼.
'코라'가 항상 착용하던 코르셋은 반듯한 여성상을 강요하는 '굴레'를 표현하는 상징적인 역할을 한다. 처음부터 '속옷'조차 제대로 입지 않는 '자유'의 루이스와는 완전한 대조를 보인다. 떨어진 책조차도 혼자 주을 수 없도록 만드는 '코르셋'의 굴레에서 벗어나 일반 속옷을 입게 될 때까지의 변화는 '코라'의 생각의 변화이기도 한 것이다.
이 책은 1920년대 일어났던 사회적 문제를 자연스럽게 다룬다. '성소수자', '밀주 금지법', '콘돔사용' 등이 그러하다. 여성의 억압을 얘기하면서도 '성소수자'들의 상황도 놓치지 않는 모습이 좋았다. 그리고 굴국의 삶이었지만 결국 자신의 모습을 관철시킨 '루이스'와 그 모든 것들을 지켜보며 스스로의 변화에도 만족한 '코라'의 모습은 깨어나고 있던 여성들의 모습을 잘 그려낸 것 같다.
넌 가장 행복해질 것 같은 곳에 있어야 해.
루이스 할리우드가 싫어? 그럼 그리로 돌아가지마.
하지만 여기에도 머무르지마. 다른 데로 가.
설사 네 어머니가 곧 죽는다 해도, 네가 가장 행복해질 것 같은 데로 가.
기차를 타고 가버려.
소설은 미국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캔자스주 위치타를 배경으로 잡은 이유도 그러하며 뉴욕이라는 변화의 중심에 있는 도시로의 여행으로 잡은 것도 스토리를 이어나가기 위함일 것이다. 소설책에 레퍼런스가 붙어 있을 정도로 저자는 역사적 고증에 신경을 쓴 것 같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여성들은 굴곡진 삶을 살았을 것이다. 전쟁과 산업주의로 발전해 온 세상은 남자들에게 더 기울 수밖에 없었다손 치더라고 남성과 여성 사이에 존중과 배려는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 이 책은 어떻게 보면 미국판 '82년생 김지영'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책보다는 훨씬 더 잔잔하면서 긴 울림을 준다. 그것은 내가 성소수자는 아니지만, 성소수자들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지만 '엔드루 솔로몬'이라는 분은 존경하는 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그녀는 이름을 알고 있었다. 당연히 코라였다.
. . .
인생의 마지막 몇 시간 동안 조용히 흔들리며 현실에서
멀어졌다 돌아오기를 반복하면서도
그녀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사회는 결국 보편적인 가치를 얘기할 때 비로소 움직이는게 아닐까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독서 (서평+독후감) >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평) 양들의 침묵 (토머스 해리스) - 나무의철학 (0) | 2021.07.13 |
---|---|
꿈꾸는 책들의 도시(발터 뫼르스) - 들녘 (0) | 2021.07.10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김초엽) - 허블 (0) | 2021.07.02 |
(서평) 시시리바의 집(사와무라 이치) - 아르테 (0) | 2021.06.27 |
달러구트 꿈백화점(이미예) - 팩토리나인 (0) | 2021.06.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