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에게 직접 선물 받은 책은 처음이라 약간 묘한 기분이 들었다. 긍정적인 생각만 들었다면 그것은 거짓이었을 것이다. SNS를 시작하고 누군가로부터 부탁받은 메시지 중에서 가장 긴 글이었을 것이다. 가끔 글에서 향기가 나기도 하고 온기를 느낄 수도 있다. 메시지에는 상대를 생각해주는 조심스러움이 글에 묻어 있었다.
사실 책을 처음 받아들었을 때는 그렇게 기대를 갖지는 않았다. 책이 내용이 더 중요하겠지만 손으로 맞이하는 종이의 질감과 표지 디자인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하다. 감성 팔이 책이지 않을까라는 의구심을 품고 읽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작가님께 조금 죄송하다.
좋은 산문집을 고르기가 어려운 것은 글쓴이와 내가 감정적인 공명이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글이라도 공감이 깔리지 않으면 지독하게 읽히지 않는 것 또한 산문집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나와 잘 맞았다. 글에서는 나에게는 익숙하면서도 옛날 생각하는 것들이 자주 등장했다. 피식피식 하는 기분 좋음으로 읽기 시작한 것도 책에 대한 의구심도 날려버린 순간이었다.
기다림은 지루하다.
이걸 잘 견디는 법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금도 슬프지 않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수록 그 끝에 더욱 활짝 웃을 수 있다.
글쓴이의 삶을 그냥 담담히 적어내어 가는 글인데 문장이 참 담백하고 온기가 느껴졌다. 작가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있자면 내 주위에 있었던 사람 생각이 나기도 했다. 언제부터인가 인연을 맺고 산다는 것이 피곤한 일이 되었다. 적당한 관계가 서로의 깊은 곳을 건드리지 않으며 행복한 시간을 나눌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글을 읽고 있자면 마음을 조금 더 열어둬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잠시 하게 되었다.
어른에 가까워진다는 것은 어쩌면 어떤 부분은 그냥 포기할 줄 안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상대가 나에게 맞춰주기를 바라기보다 그냥 내가 상대에게 맞춰줄 수 있게 된다는 말인지도 모른다.
산문집의 글이 이렇게 내 생각과 많이 겹친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너무 편하게 읽혔다. 원래 책은 내 생각과 다른 책을 읽고 치열하게 논쟁하고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하지만 같은 결을 가지는 문장을 읽으며 편안함을 느끼는 호사도 가끔씩 누려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요즘 힐링 도서들이 많은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대화를 할 때는 끊기지 않고 말을 주고받는 것도 좋지만
때론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며 침묵하는 시간도 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또다시 누군가 먼저 입을 열어 침묵을 깨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다.
좋은 것을 대할 때 사람들의 반응에는 침묵이 함께 한다. 정말 좋은 책을 읽었을 때에는 글로 표현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가슴으로 받은 말을 문장으로 표현하기에는 자꾸 모자라 보인다. 상대의 침묵은 어떻게 보면 무언의 동의일 수도 있다. 내가 보낸 마음이 상대의 마음에 동화되어 반사되지 못해 내가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이 책은 햇살 좋은 날 산들바람 부는 그늘에서 읽으면 참 좋을만한 책이었다. 선뜻 먼저 책을 선물해 주신 김본부 작가님께 감사를 전합니다.
'독서 (서평+독후감) > 시집 | 산문집 |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평) 이왕이면 행복해야지 (도대체) - 은행나무 (0) | 2021.09.12 |
---|---|
여보 나좀 도와줘(노무현) - 새터 (0) | 2021.07.05 |
일기일회 (법정) - 문학의 숲 (0) | 2021.06.10 |
보통의 언어들 (김이나) - 위즈덤하우스 (0) | 2021.06.07 |
버티다 버티다 힘들면 놓아도 된다 (윤지비) - 강한별 (0) | 2021.05.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