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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언어들 (김이나) - 위즈덤하우스

야곰야곰+책벌레 2021. 6. 7.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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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노래 가사나 방송에 듣게 되는 김이나 작사가의 말을 좋아한다. 같은 말이 예쁘게 혹은 서정적으로 표현되는 그 순간이 좋다. 잔잔한 목소리는 약간의 덤이다. 이 책은 에세이로 분류되어 있지만 에세이는 약간 곁들여진 느낌이고 단어의 의미, 쓰임 등을 얘기하고 있는 약간의 강의적인 요소도 많이 있다.

  에세이 마니아라면 낯선 책일 것이고 말과 단어에 집중한다면 좋은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읽고 넘길 수 있는 책일 수도 있지만 뭔가 알 것 같은 느낌에 페이지를 잡고 있기도 한다. 약간 오락가락하는 면이 있지만 나에게는 좋은 책이었다.

  책을 읽고 있자니 김이나 작사가가 단어를 얼마나 정성 들여 사용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세종대왕님이 주신 축복 같은 한글은 같은 의미를 가진 단어들도 미묘한 감정 차가 있다. 같은 말도 환경에 따라 다른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런 고민의 흔적들이 적혀 있었다.

 

사랑하는 마음은 마음을 붕 뜨게 하기도, 한없이 추락하게 하기도 한다.
반면 좋아하는 마음은 온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리게 해주는 안정성이 있다.

    좋아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은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표현이다. 둘은 같은 듯 하지만 다른 마음을 빚어내는 서로 다른 표현이다. 반면 실망하는 마음은 '바라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상한 마음'으로 그 주체는 상대에게 있는 게 아니라 '무엇을 바랐던' 나에게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기대'에게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 또한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낭만' 이니까.

  쳇바퀴 같은 인생이라고 다들 푸념을 늘어놓지만 어떻게 보면 그 쳇바퀴라는 것이 내가 노력해서 만들어 놓은 인생의 한 형태가 아닐까라는 말은 부정하고 싶었지만 공감이 가버렸다. 본능에게 변화라는 것은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에 안정을 찾으려고 하는 거니까 말이다. 내가 찾으려고 했던 안정이 쳇바퀴가 되어 나의 곁에 있는 것이니까..

 

  앞에서 적은 글 외에도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들이 많았다. 특히 동사들이 많았는데 동사는 공간감을 표현하기에 가장 좋은 형태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소란스럽다'는 '시끄럽다'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그 단어가 가진 풍경이 있다. 노래처럼 짧은 글로 많은 것을 표현하고자 하면 단어가 가진 이미지가 풍성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책은 많은 단어와 그것에서 느낀 작사가로서의 느낌을 적어두고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예를 적어두었다.

오래 살아남는 시간 속에 잠깐씩 비참하고
볼품없는 순간들은 추한 것이 아니다.

  책을 읽다 보면 공감이 가는 것도 있고 갸웃 하거리는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 사람은 공감가지 않는 내용을 만났을 때 멈칫하는 경향이 있다. 이 부분을 넘어서는 것은 때로는 큰 결심이 필요하다. 이 책은 시집 읽듯이 읽으면 좋을 듯하다.

'이 시는 좋아. 이 시는 그냥 그런데?'

처럼 하나하나의 의미를 두지 말고 내가 의미를 담을 수 있는 부분만 빠르게 읽어나가면 생각보다 좋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마지막 부분에 추가로 넣은 글들은 좋은 글도 많지만 내 생각에는 굳이 넣을 필요가 있었을까 싶었다. 10개 내외로 담백하게 담아줬으면 하는데 완독 후 여운을 느낄 새도 없이 많은 페이지가 남아 있는 것은 약간은 노동의 느낌이 있었다. ( 에너지가 많이 남아 있지 않았었나 보다. ) 이렇게 읽으면 좋았던 기억이 희석되기 때문에 책은 그 목적에 충실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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