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서평+독후감)/심리학

노력중독 (에른스트 푀펠, 베아트리체 바그너) - 율리시즈

야곰야곰+책벌레 2021. 6. 3.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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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의 우리는 치열한 경쟁 속에 놓여 있다. IMF와 서브프라임 같은 경제 쇼크를 겪으면서 우리는 자기 계발에 몰두하고 있다. 지금의 세대들에게는 조금 더 나은 삶을 누리기 위해 스펙 쌓기에 열중하고 있다. 수험생들은 엄청난 시간을 할애하며 학교와 학원을 그리고 독서실에 오가고 있다. 예전보다 더 많은 노력들을 하고 있는 우리는 엄청나게 진화하였을까?

  가끔 아주 본질적인 생각을 해 본다. 우스개 소리지만,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 고생을 할까?"라고 자주 푸념한다. 그런 의문에 딱 들어맞는 책이다. 책을 만났을 때의 느낌은 '내가 찾고 있던 책이다.'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정말 노력이라는 것에 중독되어 살아가는 것 같았다.

  노력 만능주의는 우리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잘못되었다기보다 정말 올바른 방향으로 제대로된 노력을 쏟고 있는지도 말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노력에 대한 허무감이 들 수도 있다. 그럼에도 노력은 중요한 키워드이다. 단지 내가 쏟는 노력에 어떤 가치를 두고 하는지는 고민이 필요하다. 

세상에는 끝없이 무한한 것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우주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어리석음이다.
하지만 우주가 실제로 끝이 없는지에 대해서
나는 여전히 확신할 수 없다.
- 아인슈타인 -

 

  우리의 지식에 대한 투자는 점점 더 늘어간다. 쏟아지는 책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하나라도 더 알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런 노력 속에서 우리 인류는 더 현명해지고 있을까? 비교도 못할 만큼 진화하였을까? 하지만 우리 인류는 더 똑똑해지지도 더 행복해지지 않았다고 저자는 얘기하고 있다.

  독일 최고의 뇌과학자 에른스트 푀펠은 '노력'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나기를 권한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하지만 사실 가장 불완전한 상태로 태어난다. 결함이 많은 존재로 태어나기 때문에 노력이라는 것은 인간의 본능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 한계점에 도달했음에도 지나친 욕심을 부리다가 큰 대가를 지불하기도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에게 주어진 또 다른 능력인 직관적 사고는 과소평가하고 있다. 우리는 인간적인 모습으로 더 넓은 분야에서 더 큰 능력을 발휘하며 살 수 있는데도 말이다. 현대에 이르러 비행기도 만들고 핵폭탄도 만들며 심지어 빅뱅 같은 이론도 얘기한다. 지난 천년 정도의 시간 동안 인간은 엄청 발전했을 거라 다들 생각하지만 개개인의 지적능력은 크게 증가되지 않았고 단지 지식이 널리 보급되었을 뿐이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이룬 것은 집단적 성취인 것이다.

  지금의 인간을 석기시대로 돌려 보낸다면 살아남을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인류는 지식을 탐닉하는 동안 직관적 사고를 잃었고 더불어 감성적 지성을 잃었다. 인간은 한계가 있는 존재이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어가는 것이 있다. '지식에 대한 탐닉'만이 우리가 노력해야 할 부분인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책은 지식 중독, 속도 중독, 친구 중독, 편견, 완벽에 대한 강박, 전문성에 대한 맹신, 독서 중독을 얘기한다. 그러면서 인간은 자연이 만든 불완전한 존재이며 이를 인정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지금의 복잡한 세계를 이해하기엔 우리의 두뇌 능력은 한참 모자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단순한 지식 습득이나 축적으로 '기능적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 대신에 '주체적 지성'을 가진 사람으로 살아가길를 바라는 과학자의 인문학 같은 얘기다.

  지식과 지성을 나눠 얘기하는 것이 인상 깊었다. 지식이 많다는 것은 그것을 다 사용할 수 있는 것과는 다른 얘기이다. 모든 것을 기억하다 보면 그것을 추상화해내는 능력의 발달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인류의 교육에도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앞으로 더 많은 지식이 나타낼 것인데 옛날 사람이 만든 지식까지 모두 배우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의 사람은 지금까지의 지식을 연장하는 배움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외우는 지식 축적의 교육은 이제 지양해야 할 때가 아닐까?

  우리는 너무 빠른 속도에 짓눌려 산다. 스스로를 짜여진 시스템 속에 가두어 어리석게 만들어 버린다. 사람들은 더 많은 성공과 권력, 돈을 추구하게 된다. 너무 목적에만 매진하다 보면 진정한 즐거움과 흥미 그리고 가치를 잃어버린다. 경제적 풍요 속에서 시간의 풍요로움을 누릴 수는 없다. 성공한 사람의 열 명 중 아홉은 업무로 시간에 쫓기며 살고 있다.

바쁠 때일수록 돌아가고 시간이 없을 때는 휴식을 취하라.
- 일본 격언 -  

 

  속도에 대한 인간의 집착은 어리석다. 감정과 관심 그리고 소중한 가치를 느끼기 위해서는 분명 시간이 필요하다. 정신활동이 지나치게 되면 사람들은 지적/창조적 만취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 상태가 되면 인간은 스스로 일을 멈출 수 없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는 당연히 지적 포만감도 느낄 수가 없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게으름을 허락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능률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독서 중독을 얘기하는 챕터에서는 조금 충격을 받기도 했다. 동물에게 문자는 원래 없던 것이라 독서를 할수록 뇌의 수많은 기능은 기호로 된 세상을 해독하는데 동원된다. 시각적 보조장치에 의존해 세상을 보게 되면 태생적으로 주어진 기능들이 퇴화하게 된다. 독서는 인간에 내재된 능력이 아니라 읽기 능력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뇌의 특정 부분을 원래 목적에서 떼내어 사용해야 한다. 뇌 연구자의 입장에서 보면, 읽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이 책만 본 사람보다 훨씬더 강력하게 세상을 느낄 수 있다.

  읽기를 강요함으로써 뇌는 세상을 보는 관점을 제한당하며 기억을 빼앗기게 된다. 독서라는 것이 생각과 상상력을 키우고 감정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사실이지만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건들만이 진정한 경험이라 할 수 있다. 독서는 경험하기 전까지는 가능성의 영역에만 남을 뿐이며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려면 현실에서의 경험이 중요하다.

  책을 읽고 있는데 책을 읽는 것이 좋지 못하다는 이런 역설을 얘기하는 책이라니 참 새롭다. 사실 읽고 있자면 조금 소름 돋는 면도 없지 않아 있다. '기능적 인간'이 되어 권력도 좀 얻고 돈도 좀 버는 것이 현실적인 것이 맞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인간 본연의 감성 지능과 느림의 미학을 잃어가게 된다. 인간은 사이코패스로 진화하고 있다는 다른 뇌과학자의 말이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아서 완독 후에는 무서움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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