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강의 보기에 빠져 있을 무렵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의 강의를 찾아보다가 우연히 만난 김누리 교수의 '차이나는 클라스', 그 강의를 책으로 엮어냈다.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독일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독일의 어떤 점에 감탄을 하여, 사회 특히 교육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책을 읽어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독일과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것이 불편할 수도 있고 때로는 우리가 독일 같은 나라와 비교가 되냐는 열등의식으로 종지부 찍고 싶은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너무 독일을 예찬하는 것 같아 속으로 어느 정도의 불편함은 나도 느껴졌다.
사회적인 현상이나 문제는 원론적인 이야기도 좋지만, 어느 하나의 대상에 빗대어 표현하는 것이 이해하기는 더 쉽다. 우리는 몇 해전에만 해도 헬조선이라고 외쳤다. 그런 와중에서도 우리의 아픈 곳은 외면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문제점만 나열했다는 비판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사회적 문제가 완벽한 답이 있지도 않고 때로는 문제를 알아가는 것 또한 굉장히 중요한 과정이다. 그러면에서 이 책은 좋은 내용을 많이 담고 있다.
우리는 '참 이상한 나라'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2019년 세계에서 민주주의로 7위를 달성했다. 앞에 있는 나라들이 대부분 유럽의 나라이며 인구가 많지 않은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스위스 같은 나라들이다. 30-50 (GDP 3만불, 인구 5천만)의 강대국에서는 우리나라가 1위를 한 것이다. 광장에 나가서 촛불을 들고 잘못된 권력에 대해서 대항하는 우리나라는 정말 민주주의의 나라라고 할만하다.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집에서 회사에서 우리는 민주주의에 닿지 못했다. 아이가 생각을 하나의 의견으로 존중해 주지 않으며 회사에서는 직급으로 나눠진 계급 사회를 살아간다. 운동선수는 정기적으로 정신 교육을 받으며 예능에서는 출연자를 괴롭히며 또 그것을 보며 낄낄대며 좋아한다. 이런 모습은 전혀 어색하지 않은 우리는 일상의 파시즘 속에 살아가고 있다.
도적적으로 우월하다는 위험한 착각
우리는 많은 민주열사들의 덕분에 지금의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다. 참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독재자를 몰아내고 민주주의를 쟁취하려고 노력했고 또 그것을 이뤄냈으나 정작 사회적 구조를 바꿔내지는 못했다. 도덕적으로 너무 많은 것이 결여된 상대로부터 쟁취한 민주주의는 광장에서 이뤄졌을 뿐 우리의 일상으로 뿌리내리지 못했다. 이 새로운 세력들은 독재, 친일, 수구 등과 대립해 왔기 때문에 본인들이 항상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착각하여 더 이상적인 사회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또 다른 독재의 아래에 있다. 바로 자본주의 독재이다. 인간이 만들어 냈지만 만들어진 그것에 지배받는 (마치 신과 같은) 실체가 없기 때문에 저항할 대상도 뚜렷하지 않은 자본주의의 괴물이다. 태어나자마자 경쟁에 내몰리고 쉬는 것을 죄악으로 여기며 조금이라도 행복을 즐기려고 하면 사치를 부린다는 생각마저 든다. '자기 착취'의 삶이다.
사회가 잘못된 것일 수 있는데 개인의 노력의 부족으로 치부하며 자아를 비판하며 자존감을 점점 갉아먹어 간다. 이런 비참한 자아와 마주하며 살다 보니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지키고 있는지 모르겠다. 자본주의는 20%의 것을 버리고 가는 시스템이다. 가난한 자는 열등한 자다 라고 얘기하는 '사회 진화론'처럼 우리 사회 20%는 잔인함 속으로 내몰리고 있는 게 아닐까.
미국보다 더 미국적인
우리나라에서 독일과 같은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정치는 언제나 사람을 가르고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다. 국민과 사회를 위한 전국민적 연대가 필요한 개혁이 필요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라는 것이 '득과 실'의 잔혹함이 있으니 모두를 위한 정책이나 개혁은 아마 만들어지기 힘들 것이다. 요즘 정치인들은 '철학'이나 '신념'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아니라 인기를 위해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라는 것은 모두가 거부할 수 없던 번영의 상징과 같았다. 하지만 이것의 최대 단점이 있는데, 바로 '돈의 흐름'이 멈추는 순간 모두가 망하는 것이다. 그래서 쉴 수 없고 쓰러져도 쉴 수 없게 된다. 하루하루 경쟁에 내몰리고 있는 현실의 폭주를 진정시키려면 자본주의라는 괴물에 족쇄를 채워줄 장치를 계속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을 권할 수 있는 것은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왜 아픈지, 왜 아파야 하는지, 더 나은 대책은 없는지를 될수록 많은 사람이 고민해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공감했을 때 비로소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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