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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 (파울 페르하에허) - 반비

야곰야곰+책벌레 2021. 5. 12.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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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정말 어려웠다. 전문용어가 많이 나오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문장 자체도 딱딱했다. 정말 꾸역꾸역 읽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는 중에도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을 이해할 수 있었고 때로는 놀라기도 했다.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사람에 대해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

"시간을 초월한 정체성은 있는가?"

  정체성은 존재보다 성장에 의해 만들어지며 성장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인간사 가장 오래된 공포는 '분리의 공포'이며 가장 오래된 형벌 역시 '추방'이다. 우리가 시간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주위의 '변화'가 있기 때문이다. 맥락을 같이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자의식 또한 주위의 변화가 있기 때문에 인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타인이 결정한다고 말한 철학자 프리드리히 헤겔(Friedrich Hegel)의 말을 이해할 수 있도 있다. 자신감, 자존감 같은 특성의 발전을 되짚어보면 원래 그것이 '타인의 신뢰', '타인의 존중'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어린 시절 타인에게서 받았던 신뢰와 존중의 정도는 성인이 된 우리의 '자신감', '자존감'에 반영된다. 정체성은 오로지 우리와 외부세계의 상호작용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무엇을 느끼는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인간 또한 환경에 영향을 받게 되면 자연스럽게 '적자생존'을 얘기할 수 있다. 진화라는 것을 자칫 진보, 발전과 같은 단어와 같이 쓰곤 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다윈이 말하는 진화는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한 자"인 것이다. 진화의 잣대를 인간에게 들이대면 "가장 성공한 자" 혹은 "가장 강한 자"가 된다.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는 20세기 초반에 서유럽에서 유행했던 '사회 진화론'의 시조이다. 그는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에도 강한 사람만이 살 수 있다는 '적자 생존설'을 믿었으며, '사회 유기체설'을 주장하였다. 스펜서는 다윈의 학설을 이용하여 자신의 진화 사상을 정교하게 다듬었고, 다윈은 스펜서의 '진화', '적자생존'이라는 말을 쓰게 되었다.

 

  특정 집단이나 계급은 다른 것들보다 더 강하고 모든 것을 습득한다. 강자의 번식은 장려해야 하며 열등한 인간의 번식은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는 것이 우생학의 대중화를 가져왔으며 이것은 인종주의와 제국주의를 지지하게 만들었으며 인류에게 큰 상처를 안겼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종교는 도적 힘을 잃었고 과학은 종교가 되어가고 있다. 과학은 가치와 상관없이 객관성을 중요시한다. 진정한 완벽함은 사회가 과학으로 작동할 때라고 생각하며 인간에게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을 심어준다. 과학에게 '열정' 같은 것은 악덕이고, 원시적인 것이며 비합리적인 것이어서 진지하게 받아드릴 필요가 없다고 얘기한다.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하냐, 잘하는 것이 중요하지"

 

  '자연 도태'라는 것은 종을 넘어 개인을 노린다. 생존 투쟁에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다면 개인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나의 책임은 바로 거기에 있다. 사회는 절대 내 앞길에 걸림돌을 놓아서는 안된다. 결국 진화의 기준은 '성공'과 '권력'으로 판단되며 윤리적으로도 돈 많은 사람이 노력과 성격 덕분에 인성도 훌륭하다는 판단에 이르게 된다. 변화와 기회를 만들려면 인간은 매우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계몽주의의 견해이다.

  신자유주의가 새로운 '사회진화론'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오늘날의 신자유주의는 원래 추구하던 '메리토그라시(Meritocracy), 능력주의'와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만인은 출발 기회가 동등하다는 가정은 실현될 수 없으며 엘리트들은 자신의 과도한 보상이 '정당하다'라고 생각하고 서민들은 자신을 실패한 '열등한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해고된 사람들은 책임을 자신에게서 찾는다. 가난한 사람들은 번식하지 못하도록 사회복지제도를 없애라고 주장한 토머스 맬서스(Thomas Malthus)가 좋아하는 사회진화론과 닮아 있다.

  공동체 의식이 실종되고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부상한 주요 원인은 오늘날의 경제 모델이다. 질적 지속성을 위해 양적 성장의 이념을 최대한 빨리 포기해야 한다. '성장 이념'은 더 많이, 더 높이, 남들보다 높이'를 추구하는 자연의 사다리가 물려준 최악의 유산일 것이다. 사회는 냉소주의가 만연해지고 '이러고 살다 죽지 뭐',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하자' 식의 숙명적론적인 생각이 고착된다. 변화를 원한다면 합리적인 요인보다 정서적인 가치를 통해야 한다. 마초 같은 경쟁의식은 자기배려와는 아무 관련이 없고 즐겁지도 않다.

  책을 읽으면서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내 생각들이 사회에 지배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좋은 말로 포장된 무서운 것들이 내가 알아채지도 못하게 나를 세뇌시키고 있을 수 있다. 최근에 더욱더 부각되고 있는 '기회의 균등' , '과정의 균등'은 신자유주의에 물든 우리로써 거슬리는 것일 수 있지만, 이런 친구들이 세상을 바꿔나가고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성선설을 좋아한다. 사람을 사람답게 생각하려면 믿어야 할 것 같아서다. '진화론'적 입장에서는 성악설이 맞을거다. 모두들 약육강식의 틀 속에서 끊임없이 경쟁해야 하니까. 세상은 여전히 따뜻하고 좋은 사람들이 많이 때문에 괴물에 집어삼켜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게 했던 행동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세뇌시키고 있던 행동 같아서 소름 돋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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