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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영화로 읽는 페미니즘 역사 (조현준) - 채륜

야곰야곰+책벌레 2021. 9. 12.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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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어렴풋이 알고 있던 페미니즘은 <양성 평등>, <당당한 여성> 이런 키워드로 표현할 수 있었다. 지금의 페미니즘은 그 단어만으로도 질색팔색이 될 정도로 굉장히 성가신 단어가 되어 버렸다. 다르게 얘기하면 <양성 혐오> 정도가 되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리고 페미니즘이 추구하던 가치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런 고민의 답을 찾아가는데 첫 번째 답을 해줄 이 책을 채륜 출판사에서 지원해 주었다.

  페미니즘은 <엠마 왓슨>의 UN 연설 이후로 급격하게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먹고살기 바쁜 나는 굉장히 시끄러워졌네 정도만 느꼈을 뿐, 그네들이 만든 전장 위에 서 있지도 않았다. 그동안 수 없이 양산된 양성 비하 단어들은 알아채지도 못했고 왜 그래야만 하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정치권에서는 이런 갈등을 기회로 보고 갈등을 더 부추기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페미니즘은 왜 이렇게 극단적인 형태로 변해버린 것일까?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남성들 또한 혐오의 감정을 숨기지 않는 것일까?

  사실 이 책은 페미니즘에 대해 알아가기 위한 첫 책으로 가볍게 시작하려 했으나 1장에서 페미니즘에 대해서 정말 명료하게 줄여놓아서 어떤 관점으로 알아 가야 할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참고 문헌 또한 괜찮은 책들도 구성되어 있어서 장바구니에 담아 두었다. 서문으로 지금 페미니즘이 처한 상황에 대해 알 수 있었으며 100년의 역사를 가진 서구 사회의 페미니즘과 반 세기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길라잡이가 되어 주었다.

  페미니즘의 기본적 가치는 휴머니즘이고 인본주의다. <남녀가 동등한 권리와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신념>을 나타내는 페미니즘은 자유와 평등의 인간 보편적인 기본권을 남녀 모두 누리고 살자라는 것이 그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1세대의 페미니즘은 여성의 참정권을 2세대 페미니즘은 여성의 역량을 키우고 여성의 처한 현실에 대한 개선에 집중했다. 3세대의 페미니즘은 여성, 남성을 사용하는 그것 자체부터가 차별이라고 인정하고 '다르지만 평등하다'라는 모티브 아래 장애인, 성소수자 등 다양한 소수자의 문제로까지 확장시켜 갔다. 4세대 페미니즘은 IT 기술을 중심으로 네트워크 속에서 확산되었는데 이런 다양성은 개인이 보고자 하는 것만 보게 되는 '확장 편향성'을 가지고 되었고 더 많은 정보 속에서 개인은 자신의 신념에 갇혀버리게 되기도 하였다.

  한국에서의 페미니즘은 민주화 운동으로 여성의 참정권도 동시에 얻을 수 있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유학을 다녀온 여성들로부터 페미니즘은 전파되었으며 여성학 강좌 등이 개설되었다. 우리나라의 페미니즘 역시 초기에는 평등주의를 기반으로 시작되었다. 페미니즘이 전파되는 도중 중요한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군 가산점 폐지>와 <호주제 폐지>였다. 동시에 여성을 위한 정책과 여성들의 정계 진출을 시작으로 페미니즘은 급격이 동력을 잃어 갔다.

  게다가 IMF의 위력은 페미니즘을 전멸시킬 법한 사건이었다. IMF로 우리나라는 급격하게 신자유주의로 변해가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이 시작된다. 먹고살기 위한 욕망 앞에 다른 모든 욕망은 무너지기 마련이다. 소수자는 밟고 올라가야 하는 대상으로 다시 전락하였다. 급격한 개인주의는 각자도생의 길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한국의 2세대 페미니즘은 기본의 페미니즘이 현실에서의 여성의 상황을 바꿔주지 못했다고 생각했고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노선을 걷게 된다. <메갈리아>로 대두되는 페미니즘은 '미러링' 전략으로 혐오에는 혐오로 맞대응했다. 그리고 여성들과 동등한 교육을 받고 자란 남성 세대들이 목소리가 커지면서 이들의 대립은 분명해졌다. 그들은 서로가 혐오를 혐오로 대응하고 있다.

  지금의 20세대는 페미니즘을 논하기 전에 생계형 전장에 내몰려 있다. 남자와 여자를 떠나서 좋은 직장, 좋은 성취, 자본 혹은 미모 등이 지위를 나타낼 정도가 되었다. 인본주의적인 평등을 논하기에는 신자유주의와 개인주의가 만연해 있다. 여성들은 자신의 차별적 환경에 분노하고 남성들은 또 다른 차별에 내몰려 분노하고 있다. 승자독식 사회는 그렇게 젠더의 차별을 또 다른 방법으로 희석시키고 있다.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강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필요하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 페미니즘에게 필요한 것은 분노를 걷어내는 것이 아닐까 한다. 남성 혐오가 없는 상태에서 페미니즘을 이끌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을지도 모르겠다. 페미니즘이 <양성평등>의 인본주의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에 지지를 보낼 남성들도 많을 것이다. 나 또한 내 딸이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기 바라는 아버지 이기도 하다.

  페미니즘은 차별 없이 차이를 인정하다는 것이 그 가치라고 했다. 그런 가치라면 인류 모두가 공감할만한 충분한 가치이다. 이런 가치라면 누구라도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전에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오해와 혐오에서 먼저 벗어나야 할 것이다. 아주 어렵고 긴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겠지만, 역사는 그렇게 매일 조금씩 나아가고 있으니 그런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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