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서평+독후감)/시집 | 산문집 | 에세이

불안 (알랭 드 보통) - 은행나무

야곰야곰+책벌레 2026. 7. 5. 00:48
반응형

  삶을 살아가면서 불쑥불쑥 존재감을 과시하는 감정인 불안. 막연하게 나타나는 불쾌함, 초조함이다. 눈앞의 공포가 그럴 것이고 안정적이지 못한 자신의 존재감 때문일 것이기도 하다. 이런 불안은 어디서부터 출발하는가에 대한 대답으로 알랭 드 보통은 '사랑'에 있다고 했다.

  인간의 욕구 중에 가장 바닥에 위치하고 있다는 '성욕'. 사랑의 형태가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말하는 사랑은 일방적인 사랑의 형태가 아니고서야 보통은 '성적 사랑'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사랑의 형태에는 또 다른 한 가지가 존재한다. 바로 세상으로부터 받는 사랑이다. 

  세상으로부터의 사랑은 대중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 아닐까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동체로부터 받는 사랑은 인간에 매우 중요하다. 이 사랑에 대한 욕망은 사회적 지탄을 받을 수도 있지만 모든 사람들이 은밀히 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공동체로부터의 사랑은 성적인 사랑만큼이나 고통스럽고 아프다. 원하는 이성을 놓칠까 봐 전전긍긍하는 그 모습 그대로 우리에게 '불안'이 된다.

  인간이 의식주가 해결되면 자연스레 권력과 명예를 찾게 된다. 사회적 위계에서 조금이라도 더 높은 곳에 존재하고 싶은 욕망은 다른 이유보다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돈, 명성, 영향력은 그 자체로의 의미도 있지만 다르게 보면 사회적 사랑의 결정체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정체는 시대에 따라 변한다. 그리고 이 사랑은 낭만적인 사랑과 마찬가지로 호의로운 시선 속에 편안함을 가져다준다.

  인간이 공동체로 사랑을 갈구하는 방식은 어쩌면 유아기 때 발현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다시 받고 싶어 하는 것과 닮아 있지 않을까. 아이가 떼를 쓰는 방식으로 부모의 관심을 받듯 인간은 금욕적인 신성함을 보이거나 권력의 투쟁에 앞장서거나 돈을 많이 모음으로써 무조건적인 사랑을 기대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인간 중에 탐미주의자나 쾌락주의자가 얼마나 될까. 인간이 갈구하는 '존엄'과 '사랑'에 대한 본능이다. 인간은 사랑을 받을 수만 있다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돈에 집착하는 것도 노래나 춤 혹은 외모에 집착하는 것도 모드 같은 맥락이 아닐까. 게임에 빠져 있는 것도 그렇다. 모두 각자가 사랑받을 공간에서 노력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평등주의가 가져온 것은 바로 '질투'다. 인간은 동등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비교했을 때 질투가 생긴다. 세상은 이미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질투할 대상은 전 세계인이 된다. 게다가 인터넷은 세상을 모두 연결시켜 놓았다. 비교해야 할 대상도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졌다. 인간은 질투할 대상도 비교해야 할 항목도 셀 수 없게 되었다. 어쩌면 하루에 한 번은 좌절해야 하는 세상일지도.

  그리고 세상을 관통하고 있는 능력주의는 부와 가난에 대해 '인격'을 투영시키고 있다. 부자라는 것은 능력주의에서 사회적 가치가 높은 것이고 가난은 자연스럽게 가치 없음이 된다. 능력주의는 철저한 기회의 평등을 외치는 동시에 능력에 따른 차별도 인정한다. 기회의 평등은 어느 선에서 인정해 버렸지만 부에 대한 차별은 꽤나 절대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것 같다. 사회 진화론적인 인식까지는 아니지만 세습된 부마저도 인격으로 간주되어 버리는 요즘 세상을 보면 탐탁지는 않은 것도 사실이기는 하다. 능력주의는 가난이라는 고통에 수치라는 모욕까지 더해줬다.

  우리가 실패를 두려워하는 것은 세상이 성공에 대해서만 호의를 보여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동시에 실패는 많은 사람들이 차가운 눈길로 바라보고 가혹하게 해석할 것이라는 것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패배자'가 되는 두려움까지 감수해야 한다. 능력주의는 졌기 때문에 공감을 얻을 권리도 상실했다는 의미까지 담는 가혹한 말이 되었다.

  인간은 먹고사는데 모자람이 없는데도 치열하게 살아간다. 공동체의 소득에 비해 뒤쳐지면 언제나 가난에 시달린다. 가난은 공동체의 심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물질주의적인 사람이 아니더라도 부를 축적해서 불명예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욕구를 막을 수 없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불안은 자신을 덮칠 것이다.

  삶에서 완전과 완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를 때마다 부의 개념은 바뀌고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조건도 변했다. 시간이 흐르면 전환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인간의 불안도 결국에는 인간 스스로가 만든 '관심'을 과장해서 받아들이는 것일 수도 있다. 스스로가 만든 이상에 의해 괴로워하고 그것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그럼에도 시대를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그 틀을 깨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그저 지금과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시름해 보는 것이 지금의 시대를 비판 없이 숭배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것이 다음 패러다임을 위한 인간의 준비가 아닐까 싶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