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사에 대한 책은 참 많다. <총균쇠>, <사피엔스>처럼 여러 학문을 넘나들며 인류사를 연구하는 책이 있는 반면 <이기적 유전자>처럼 순수하게 생물학적으로 다루는 책들도 있다. 훌륭한 책들은 정말 많고 그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인간을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타당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인간 역사의 잘 정리한 듯한 이 책은 흐름출판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표제의 <물질의 세계> 저자의 극찬은 살짝 손가락이 오그라든다(나는 물질의 세계도 샀는데.. 갑자기 안 읽고 싶어 진다). 샘플북만 봐서 그런지 이 책은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많은 벽돌책들이 담고 있는 메시지 이상의 것을 얘기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러 매체에서 추천을 하는 이유 또한 명확하다. 메시지와 통찰이 아무리 좋아도 읽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게 아닌가.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꽤 괜찮은 포지션을 가지고 있다. 여러 책을 잘 버물여 놓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역시 샘플북이라 확신은 할 수 없다).
이런 종류의 책을 많이 읽은 나에게는 사실 신선한 제목을 발견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책은 인류사 어디에서부터 시작할까. 때론 생물학적인 얘기를 때론 문화적인 얘기를 하게 될 것이다.
인류는 문명을 이룩한 이래 전혀 진화하지 못하고 있다. 유전이라는 긴 세월은 여전히 자연선택의 효과를 내어놓지 못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문화라는 것은 약자마저 보살피며 적자생존을 무색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자연선택 안에서 인간 선택을 하고 있는 걸지도.
이기적 유전자도, 협력의 유전자도 기생도 공생도 모두 그냥 하나의 현상일 뿐이다. 살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말하는 편이 오히려 나을지도 모르겠다. 숙명론적인 회의감에서 벗어나기 위함일까. 객체인 인간은 자신의 행동의 특별함을 부여하려고 하는 건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결과에 지나지 않을지도.
그럴 수 있다. 그런 경우도 있다고 읽으면서 여러 가지를 알아가면 된다. 우리는 이기적일 수도 이타적일 수도 있다. 이기적인 것이 이타적인 행동일 수도 있고 이타적인 것이 이기적인 행동일 수도 있다. 유전자가 모두 자신을 퍼트린다고 하지만 자살하는 쥐들의 행동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개미와 같은 초유기체는 객체 자체가 유전자 같을 수도 있다. 그래서 늘 어렵다. 인간의 행동이라는 것은.
생물학적이면서도 인류사적인 이 책이 너무나도 철학적인 제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어쩌면 아닐 세스의 <내가 된다는 것>과 묘하게 이어질지도 모르겠다(이 책도 흐름출판 책이다). 인간의 진화는 말과 의식을 가짐으로써 다른 길을 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밈'이라고 불리든 그렇지 않든 말이다.
이 책은 인류 역사와 진화를 다룬 벽돌책에 도전하다 실패한 사람에게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책 말미에 <총균쇠>, <사피엔스>를 읽기 전에 읽어야 할 책이라고 적혀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 이다. <이기적 유전자>를 읽기 전에도 괜찮을 것 같다. 어렵고 긴 글에 도전하기 전에 길에 대해 알 수 있는 좋은 안내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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