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듯한 역사 연구가 황현필 선생의 새 책은 <근대>를 얘기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근대를 얘기하는 건 쉽지 않다. 왕족 국가였던 조선에서 갑자기 식민지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몇몇 혁명이 있었지만 눈에 띄지 않기도 하고 시련 속에서 갑작스레 현대로 들어선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간단한 이유 때문만은 아닐 거다. 일제 식민지배 하에서 생성되었던 무수한 친일파와 쿠데타 세력들은 자신들의 명성과 안위 그리고 부를 정당화 해야 했기 때문에 근대를 지속적으로 자신들에게 맞게 해석했다. 그리고 근현대를 얘기하는 것을 굉장히 피곤하게 만들었다. 민족 반역자를 처단하지 못한 역사는 근대를 안갯속에 가뒀던 게 아닐까 싶다.
근대를 얘기하려면 <병인양요>나 <신미양요> 근처부터 시작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겪으면서 급속하게 현대화되었고 우리는 흥선대원권의 쇄국 정책으로 조금 늦어진 것도 사실이다. 당시 상황으로 보면 강자에게 쉽게 굴종한 일본이 서양 세력에 피를 받치며 싸웠던 우리보다 빠르게 성장하고 패권을 쥐어갔다는 것이 안타까운 것도 사실이다. 결과론적으로는 흥선대원군을 욕할 수 있지만 <애국>의 입장에서 보면 또 그렇게 쉽게 평가할 수 없을 것도 같다.
흥선대원군은 왕족도 아니면서 10년 넘게 섭정을 한 인물이다. <쇄국정책>의 이미지 속에 박혀 있지만 양반에게 세금을 매기고 서원이라는 카르텔을 격파했다. 왕권을 강화한 어떻게 보면 꽤나 진취적인 인물이었다. 그를 섭정에서 물러나게 만든 최익현은 나라를 민비 일가에게 놀아나게 만든 장본이기는 하지만 철학과 신념이 있는 <보수>였는지도 모를 일이다(대쪽 같은 사람이라면 그렇게 평가할 수도 있을 듯하다).
민비는 <명성황후>라고 불리고 있지만 가장 부패하고 욕심 많은 여인이었다. 나랏돈을 물 쓰듯이 쓰고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열강을 끌어드리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물론 고종의 심약함이 원인일 수도 있지만 나라는 그렇게 열강들의 놀이터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한 나라의 왕이라는 사람이 다른 나라 공사관에 일 년 넘게 호의호식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린지 이해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지리적으로 열강들 틈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균형 외교를 해야 한다. 자칫해서 명분이라도 주게 되면 옳다구나라며 힘을 드러낸다. 그건 지금의 시대도 마찬가지다. 줄타기를 잘하면 모두에게 시선을 받지만 자칫 잘못하면 아수라장이 될 수 있다. 그럼에 지금 정부의 외교력은 정말 걱정스러울 정도다(네이버의 라인 문제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못하는 것을 넘어 지원 사격까지 나서다니..).
흥선대원군이 조금 일찍 나타났다면 고종이나 순종이 심약하지 않았다면 민비가 조금 지혜로운 여인이었다면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다행스럽게 우리나라는 빠르게 성장했지만 과거의 아픔을 생각해 보면 그런 가정을 계속해보게 된다. 그리고 나라를 팔아먹은 자들의 평가와 그 후손들의 태도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친일파의 후손이었지만 이를 부끄러워하고 평생을 나라를 위해 일한 우장춘 박사와 같은 인물이 정상이 아닐까.
우리는 조선 후기를 비참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나라가 약한 것이 모두 우리의 탓으로 하는 경향이 있다. 시대가 바뀌었다. 길 가다가 깡패에게 두들겨 맞았다고 내가 잘못한 건 아니다. 나의 약함을 분해하고 무술이라고 배워보겠다는 건 나의 마음이지 나의 잘못이 아니다. 조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건 어쩌면 친일의 잔재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점점 강해지고 있는 건 우리 스스로가 노력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지금의 나의 행복이 중요한 것도 사실이지만 역사의 긴 흐름 속에 나를 인식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특히 근현대사의 흐름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역사는 지금도 기득권이 끊임없이 고쳐 쓰려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이익을 위한 역사가 아니려면 결국 다양한 해석의 역사를 읽는 수고와 해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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