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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측정의 세계 (제임스 빈센트) - 까치

야곰야곰+책벌레 2023. 12. 25.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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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측정은 인지는 한 부분이다. 그리고 측정은 인지 중에서도 가장 집중해서 보는 행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언어와 문자가 세상을 살아가는 인류들의 집단 지성을 가능하게 해 줬다면 측정은 세상을 이해하는 능력을 가져다줬다. 나태주 시인의 시처럼 자세히 보고 오래 보아 할 수 있게 된 측정은 인류가 세상을 사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측정의 역사에 대해 얘기하고 현대에 측정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는 이 책은 까치글방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측정은 고수준의 인지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측정은 인류의 인지에 비약적 도약을 가져왔다. 교환을 위해 물건을 들고 다니는 불편함 대신에 기준이 될 만한 다른 것들을 만들었다. 인간의 추상화 능력은 인류 발전의 큰 이정표가 되었다. 

  측정이 인류의 발전에 긍정적인 측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측정은 기득권들이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만들어지기도 하고 왜곡되기도 했다. 사실 도량의 단위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평소 사용하려는 단위가 가장 편한 것이었다. 세금을 위해 혹은 무역을 위해 만들어지는 단위들이 최초 생산자에게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표준이라는 것에 대한 싸움도 실제 사용할 일이 없는 기득권층의 싸움이었다.

  시대가 흐르면서 온도와 무게가 수량화되고 시간 또한 수량화되었다. 측정할 수 없는 연속적인 현상들은 조금씩 측정 가능한 것들이 되어 갔고 인간의 인식 또한 변하게 되었다. 측정은 세상의 생생한 활력을 그저 숫자로 표기하는 어리석은 행동일 수 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세상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 정확하게 측정하려는 욕망은 더 구석구석을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인간이 세상을 더 자세히 들여다 봄으로서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여러 곳에서 측정을 하다 보니 단위 또한 우후죽순으로 자라났다. 단위는 도시 하나만 건너도 통용되지 않을 수준에도 이르렀다. 그래서 단위의 통일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단위는 전 세계적이어야 했다. 프랑스의 탈레랑은 국제 도량 단위를 만들었다. 길이, 부피, 질량을 기본 단위로 하는 십진법적 도량 단위 법으로 단위끼리 환산도 가능하다. 미터법 보급은 순조롭지 않았고 민족주의처럼 자신들만의 단위를 지키려는 노력에 부딪혔다.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1840년 강제 집행하기에 이르렀다. 미터법 초기에는 표준을 나타내는 물건이 있었지만 현재는 빛으로 거리를 나타내는 것과 같이 추상적인 정의로 변화되었다.

  세상은 여전히 10진법, 12진법, 64진법 등의 뒤섞여 있고 몇몇 예전 단위로 남아 있다. 미터법은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사용하지만 미국, 미얀마, 라이베리아만이 공식적으로 채택하지 않고 있다. 

  인류는 축적된 미덕에 대한 믿음, 진보에 대한 믿음이 있다고 콩도르세는 말했다. 측정은 과학이 되었고 진보로 가는 열쇠이기도 했다. 많은 결과는 수치화되었고 통계로 만들어졌다. 그 속에서 평균의 문제나 우월성의 문제도 발생하였다. 하지만 덕분에 상관계수에 대한 해석도 가능하게 되었다. 세상은 점점 더 숫자로 표현되고 있다.

  저자는 측정의 세계를 나열한다. 그러면서도 반대 방향의 질문을 던진다. '수량화된 자아'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우리의 신체는 수많은 숫자로 나열되고 있다. 그 숫자에 생명의 열쇠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자아에 대해 자유 의지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 우리는 매일을 수치화하며 조금 더 나은 숫자를 위해 TODO 리스트를 챙기고 있다. 이것은 정말 진보를 위한 길일까? 저자는 질문한다.

  세상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은 근대 문화를 이끄는 힘이다. 하지만 우리는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마주할 때마다 세상을 느낀다고 얘기한 로자의 말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수치화된 아이들 어느새 IQ, EQ, SQ 등이 측정되고 수많은 시험의 결과로 숫자와 마주한다. 사회생활을 하며 KPI와 같은 숫자와 마주한다. 정말 그것이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전부일까? 수치화된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본다.

  저자는 측정에 대한 흥미진진한 얘기와 더불어 숫자로 표현되어 가는 세상 속에서 수량화된 인간의 모습에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숫자는 인류의 진보를 이끌었지만 인간마저 숫자에 삼켜질지도 모른다. 우주를 이루는 하나의 숫자가 되어 버린 인간. 인간은 사라지고 통계만 남는다. 베트남 전에서 승리를 숫자로 만드니 민간인 학살이라는 일이 이뤄지듯 숫자 이면에 묻혀버린 질문에 답할 시간을 가져 보는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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