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깝게도 고려하면 가장 많은 기억나는 게 무신정변이고 정몽주와 정도전 그리고 최영과 이성계다. 훌륭한 이야기도 많은데 이렇게 좋지 않은 이야기가 주로 다뤄지고 있다는 건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야 그럴 것이 무신 정권이 무려 100년이나 지속되었고 왕권을 회복하는가 싶다가도 능력 없는 왕족으로 파탄이 나기 일쑤였다.
무신 정변과 고려 말기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북스고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고려 역사의 긴 부분은 무신정권이 차지하고 있다. 예로부터 문신은 무신보다 위에 있다는 개념이 강했고 군대의 최고 수장도 늘 문신이었다. 시대가 흐르면서 무신은 자연스레 자신의 권력을 확장해 가며 어느새 동등한 수준 근처까지는 왔다고 느낄 즈음에 사달이 났다.
김부식의 아들 김돈중의 못되 먹은 행동이 발단이었다. 섣달그믐 행상에서 느닷없이 정중부의 수염을 촛불로 불태워 벼렸고 이에 정중부는 손찌검을 했다. 김부식은 아들의 못돼먹는 행동을 뭐라 하지 않고 인종에게 정중부를 매질할 것을 허락받았다. 후에 인종은 김부식을 달래 흐지부지 넘어가게 되었다. 잘못한 놈이 성낸다는 꼴이 딱 이렇다. 막돼먹은 부모는 고려시대에도 있었던 거다.
군부의 불만이 점점 쌓여 가다가 결국 쿠데타를 일으킨다. 그리고 문신은 죄다 척결하게 된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지만 평생 칼질만 하던 이들에게 정치는 그렇게 쉬운게 아니었다. 정중부가 죽고 나서 권력 다툼으로 자기들만의 싸움이 생겼다. 그리고 최 씨 집안이 70년을 권력을 잡게 된다.
당시는 참 어려운 시기였다. 왕이라는 작자도 자격 미달이었고 귀족들은 자기 배부르기 바빴다. 게다가 몽골은 주기적으로 침입했다. 백성들은 참 살기 어려웠던 시기였다. 정치에 '정'자도 모르는 작자가 자기 신념에 휘두르는 칼이 얼마나 백성을 힘겹겠을까. 참 공감되는 요즘이다.
그런 와중에서도 팔만대장경도 만들어졌고 삼국유사와 제왕운기도 집필되었다. 삼강청자는 고려의 대표적인 예술품이 되기도 했다. 게다가 최무선이 화포를 발명했으니 좋은 왕 아래였다면 부국강병의 조건이었을텐데 참으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구의 약탈에 도방이 모두 파괴된 청자의 맥도 끊어져 버렸다. 약탈에 제대로 대응도 못하고 해변가에 살지 말라는 게 나라의 대책이라니 혀를 찰 수밖에 없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라고 했던가. 썩을대로 썩을 귀족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자연스러운 권력 이행을 바라던 이성계에게 이방원이라는 아들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결국 급진적 신진사대부와 새로운 세상을 열게 된 것이 고려의 마지막 운명인 것 같다. 개혁은 혁명보다 어려운 일이니까.
조선이 열리기 직전에 책은 끝을 맺는다. 찬란한 고려의 이야기를 담기에는 너무 많은 몽골과 거란의 침임 그리고 힘없고 카리스마 없었던 왕족의 이야기로 소위 '국뽕'을 느끼는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제목도 '갈등사'였을까? 세 나라를 합치면서 통합의 메시지가 결국 많은 권문세가를 낳았고 그들이 왕권을 흔드니 나라 또한 외세의 침약에 약할 수밖에 없었을 거다. 나라에 도둑이 많으니 나라가 바로 설 수 있을까.
그래도 고려는 통일된 국가와 하나의 민족이라는 의미를 만들어낸 우리 역사의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관심있게 봐야 한다. 정치적인 부분에서는 안 좋은 얘기가 많았지만 청산별곡, 한림별곡과 같은 문학도 있으니 여러 방면으로 관심을 가져 보는 게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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