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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이언 모리스) - 글항아리

야곰야곰+책벌레 2023. 11. 15.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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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선을 확 끌고 가는 제목에 눈이 간다. 동양에서 태어나고 살고 있는 나에게는 꽤나 궁금한 질문이다.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태동했지만 문명은 인류가 초승달 지역에 이르러서야 시작되었다. 그리고 중국땅에 존재했던 제국들은 세계의 부의 중심이기도 했다. 왜 권력은 썰물처럼 갑작스럽게 서양으로 빠져나갔을까? 그리고 다시 부상하는 중국을 보며 많은 서양 학자들은 권력이 다시 동양으로 넘어가고 있다고 말하고 있을까?

  이 책은 '서양은 대단해'라는 인종주의적 내용이 아니다.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총균쇠>처럼 인류의 불평등은 우월함이 아니라고 얘기하고 있다. 인류는 환경에 대해 여러 선택을 할 수 있었겠지만 결국 지구가 움직이는 대로 움직여 왔다. 

  저자는 생물학과 사회학을 바탕으로 인류가 발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증명하고 지리학을 이용하여 그 부와 권력의 이동을 설명한다. 자신의 가정에 대해 자세 설명을 한 뒤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서양사와 동양사 모두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내용은 자세하다. 그리고 양쪽의 역사가 어떻게 서로 이어져 왔는지를 설명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역사적인 부분만 봐도 훌륭할 정도다. 

  저자의 스토리텔링 또한 좋다. 고대의 이야기를 할 때조차 현대에 가까운 이야기로 스토리를 풀어간다. 그리고 '만약에'라는 소설을 적고 그렇지 않았던 역사의 이유를 설명한다. 내용만으로 880페이지가 되는 이 책은 읽고 나서도 피곤함이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저자의 능력이 탁월하다.

  책은 생물을 기반으로 인류가 다르지 않음을 얘기한다. 이런 내용은 많은 책에서 다루고 있다. 인종주의자들은 새로운 종이 나타날 때마다 열광했고 자신들이 생물학적으로 우월함을 증명하고 싶어 했다. 저자는 인종주의가 싫다고 혐오만 하는 것은 잘못된 거라며 역사적으로 과학적으로 동등함을 설명하고 있다. 인류는 결국 사람 속(Homo)이라는 단일 종족이라는 것이다. <총 균쇠>에서 설명했듯 시간적으로 지리적으로 시작이 달랐을 뿐이다.

  이 책의 압권은 초승달 지역에서 황허강에서 문명이 싹트고 나서부터다. 같은 연대를 두고 양쪽을 번갈아가며 설명하는데 마치 양쪽 역사서를 비교 분석하는 느낌마저 든다. 초승달 지역에서 정주를 먼저 시작한 인류와 황허강에서 정주를 시작한 인류는 약 2000년의 갭을 두며 나란히 성장한다. 그 속에서 생겨나는 모든 활동들은 서로 닮아 있다. 부족을 만들고 신이 되고자 했던 것도 그로 인해 생긴 인신공양도 그렇다. 국가를 만들어 내는 것 또한 별다른 교류 없이 닮아 있다. 

  기후는 인류에게 많은 영향을 줬다. 추워지고 따뜻해지는 날씨 속에 인간은 그것을 견디기 위해 노력했다. 발전은 게으름, 두려움, 탐욕에 의해서 발전한다는 말처럼 때론 두려움이 게으름을 이겨내고 탐욕이 게으름을 이겨낸다. 인류의 초장기는 대부분 두려움이 발전을 이끌었던 것 같다. 인류의 발전은 어떻게 보면 모두 우연이었을지도 모른다.

  늘 앞서가던 서양이 주춤하는 사이 동양은 크게 발전한다. 여기에도 기후는 영향을 끼친다. 조금씩 내려간 기온은 몬순의 영향으로 점점 사막화가 진행되는 동안 황허는 딱 좋을 만큼의 기후가 된다. 모심기를 개발하여 일 년에 세 번 수확할 수 있게 되었고 수문제가 시작한 대운하는 남쪽의 풍부한 식량을 북쪽으로 빠르게 나를 수 있게 해 주었다. 프로토페미스트라고 할만한 측천무후는 괄목할만한 성장을 해냈다. 그야말로 동양의 전성기였다.

  서양과 동양은 늘 발전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발전의 역설'은 늘 강한 저항선을 만들었다. 발전할수록 위기는 커졌다. 서양과 동양을 이은 거대한 교류는 결국 두 세계를 다시 밀어냈다. 바로 전염병이었다. 인류가 발전하여 천정에 닿을 때마다 어김없이 질병은 인류는 습격했다. 서양과 동양은 서로를 탐하며 평행선을 그으며 발전했다.

  총 그리고 대포의 발명은 둘을 끊어 놓았다. 동양과 서양을 잇거나 지배했던 스텝지대의 강력한 유목민들은 이제 대포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서양과 동양은 다시 끊어졌다. 동양은 내부에서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서양은 분열하였고 다른 항로를 모색했다. 희망봉을 거쳐 무역을 하기 시작했고 많은 이익을 남겼다. 이런 탐욕은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건너겠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이 먹히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당시에도 지구의 크기는 얼추 계산 가능했을 것이다. 서양은 서쪽을 향했고 동양은 동쪽을 향했지만 대서양과 태평양의 크기 차이는 비교할 수 없다. 정화의 배가 태평양을 횡단할 수 있다는 실험에는 성공했지만 실질적 이득은 없었을 것 같다.

  발전은 늘 뒤처진 자에게 이롭다. 선구자가 만들어 놓은 길을 빠르게 쫓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속에서 개선까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양은 서양으로 그렇게 추월했었고 서양에게 또 그렇게 추월당했다. 그리고 지금의 시대 동양은 서양을 추월하려고 한다. 많은 학자들은 2100년이 되면 중국을 중심으로 동양은 서양을 추월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양은 여러 위기 속에서도 우세를 잘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닥칠 기후 위기는 기후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불확실한 지구'를 만들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인류는 다시 한번 적응을 해야 하고 적응의 시간에 어떤 행동을 하는지가 인류에게 닥칠 숙제가 되었다. 

  어떻게 보면 지금은 서양, 동양을 나눌 수 있을 만큼 세상이 넓은 가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이제는 오히려 범지구적인 상황이 되어 버렸다. 이제는 서로가 너무 가깝고 너무 많이 엮여 있다. 급속한 사회 발전은 결국 또 하나의 벽과 만나게 될 것이다. 몇 해 전 인류는 코로나19라는 질병을 만났다. 세계 전쟁보다 많은 수의 사람이 죽었다. 이런 일들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서양이 왜 지배했는가? 앞으로도 그럴 것인가? 의 질문에서 갑자기 지구 통합의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에 저자 자신도 약간 자기모순 같다고 얘기하지만 인류는 어차피 하나의 종이고 또 함께 발전해야 하고 또 돌파해야 한다. 그동안의 역사에서 보아왔듯 인류가 저항에 부딪혀 뚫지 못하면 그 발전만큼의 퇴보를 겪게 된다. 인류에게 '특이점'이 필요한 이유는 인류 존속의 문제 일지도 모르겠다.

  다음 대멸종에서 인류가 기록될지 안될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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