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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아자 가트) - 고유서가

야곰야곰+책벌레 2023. 11. 2.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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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족, 인족, 민족은 두루뭉술하게 같다고 얘기할 수도 있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다. 그리고 이 단어를 한글로 옮기는 것도 꽤나 고역이다. 어느 정도의 집단을 민족으로 볼 것인가는 논쟁도 많은 듯하다. 최근에 다시 주목받고 있는 민족주의를 이해하려면 그 역사를 살필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것이 근대의 산물이 아님을 주장하는 아자 가트의 얘기를 읽고 있다 보면 지금의 세상이 조금 이해되기도 한다.

  종족은 친족과 문화를 공유하는 집단이다. 어떻게 보면 피를 나눈 사이라고 할 수 있다. 도킨스의 말을 빌리자면 유전자를 나눈 사이다. 타자보다 더 중요하고 살펴야 할 필요가 있다. 종족은 진화론적으로 설명될 수 있고 그들의 행동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인족은 친족과 문화를 공유한다는 뚜렷한 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민족은 국가 내에서 정치적 주권/자치권을 가진 인족으로 정의할 수 있다.

  민족은 근대 국가 탄생과 함께 강력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들이 그 당시 태동한 것은 아니다. 시민과 국민 그리고 민족을 동일 선상에 놓고 보기도 하지만 민족이라는 것은 엄연이 다른 것이었고 그래야 지금의 세계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는 것 같다. 결국 유전자를 보전하려고 하는 본능은 문화적 일체감과 함께 인간 깊숙이 내재하고 있는 듯하다.

  인간은 비슷한 인간을 좋아하고 편함을 느낀다. 다른 외모, 다른 행동 심지어 다른 언어를 쓴다면 그는 여지없이 이방인이 된다. 외모적으로 유전자를 공유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더불어 밈을 공유하는 것도 아니다. 이방인은 민족을 분열시킬 수 있는 위험 요소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부족과 국가는 이런 친족적 친밀감을 기반 위에 만들어졌다. 유럽은 종족들을 나눠주는 지형들 덕분에 이런 친밀감을 기반이 잘 마련될 수 있었지만 대륙과 평야가 펼쳐진 스텝지역에서는 언제나 거대 종족이 소수 종족을 압살 했다. 그래서 그곳에서는 민족주의 발전이 더뎠다. 어찌 됐던 민족주의는 국가를 유지시키는 강한 구심점이 되었다. 오롯이 하나의 민족으로 구성되지 못하더라도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다수의 민족이 있어야 국가는 유지되었다. 제국의 마지막에 여러 민족으로 흩어지는 것 또한 당연했다. 민족은 자신의 종족만의 공동체를 원하기 때문이다.

  민족을 이해하면 반란이나 봉기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 아무것도 해주는 것 없었던 엘리트들은 국가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민족주의에 기댔다. 왕들은 늘 민족의 아버지로 미화시켰다. 그래서 낮은 계급의 사람들도 민족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무차별한 왕의 횡포 아래 있을 때에도 나라를 뺏길 위기 앞에서는 모두들 일어나 저항했다.

  그래서 한 국가 안에 여러 종족이 어우러지는 것은 늘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종족이 압도적으로 많은 수를 유지하지 않는 국가는 늘 하나로 묶어주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것은 언어일 수도 있고 종교일 수도 있다. 그것이 실패했을 때 국가는 여지없이 분열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무력적 압박이 필요했다. 근대에 들어 널리 퍼진 민주주의는 소수 민족들의 목소리를 터져 나오게 해 줬다. 그리고 그들의 분리 요구를 더 이상 거부할 수 없게 되었다. 서양 세력이 식민지에서 물러난 것도 그들이 싸워 쟁취한 것이 아니다. 그저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물론 패전국으로 물러난 독일이나 일본도 있다.

  지금의 중동과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가 좀처럼 통합되지 않고 내전이 일어나는 것도 민족에 얽혀 있다. 서양의 나라들이 민족에 대한 이해 없이 마구잡이로 그어놓은 국경선은 통합을 이뤄낼 수 없었다. 민족주의가 제대로 발전하기 전에 제국과 열강에 휘둘렸기 때문에 더더욱 건전한 민족주의는 기대할 수 없다. 현재 그들은 테러 국가가 되어 있지만 그 원인을 제공한 것은 분명 유럽 열강들이다. 

  중국은 한족이라는 다수의 민족이 있고 그들은 힘으로 소수민족을 억누르고 있는 상태다. 만약 중국이 민주주의로 바뀐다면 그 영토는 더 이상 중국일 수 없다. 소수 민족들은 그들의 국가를 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강력한 힘으로 억눌러야만 국가가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는 독특하다. 나라가 만들어질 당시에 앵글로 색슨족이 60%를 넘어 국가를 이끄는 것은 종족이었고 계속되는 이민 정책으로 그 비율이 점점 줄어들 때에는 기독교가 그 역할을 대신했다. 이제는 영어와 미국이라는 것이 미국이라는 민족을 지탱한다. 미국 속에 동화되어 그 안에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음으로써 친족적 유대를 만들어 간다. 이민 3세대만 해도 그들은 이미 미국인임을 느낀다. 사실 미국은 아메리카 드림이라는 강력한 호감으로 스스로 소속되길 원한 사람들의 이민이었기에 가능했을지 모른다. 그런 면에서 미국은 멕시코의 이민에 민감하다. 본국이 바로 옆에 있다면 그들은 미국에서 고립된 세력을 만들어 낼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나라에서 대규모 난민 수용에 난색을 표하는 것은 바로 새로운 종족의 세력화에 대한 반감이다. 소수의 난민이 공동체에 들어오게 되면 그들은 자연스레 동화되지만 다수의 난민은 공동체의 분열을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안에는 이방인에 대한 강한 경계심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예로부터 제국의 지배자는 다른 종족과 피를 섞음으로써 그들의 세력을 공고히 했다. 자신의 딸들을 결혼시키고 자신은 그들의 딸들과 결혼을 했다. 어떤 공동체든지 유전자의 힘은 무시할 수 없다. 공동체를 단단히 하기 위해서는 문화적 동질감도 필요하지만 그 안에서 자연스레 섞이는 유전자야 말로 같은 민족이 되는 길이 되었다.

  어쩌면 민족이란 가장 대중적인 정치세력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정치인들의 교묘한 메시지에 순진하게 반응하고 이용당하는 것 같기도 하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에 목숨과 지지를 아끼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공동체의 일그러짐을 느낀다. 

  어쩌면 다양성을 존중하는 일보다 군상들이 범벅이 되어 하나로 태어나는 편이 인간 유대에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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