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광복절. 홍범도 장군 유해를 고국으로 인도되는 과정이 영상을 통해 전해졌다. 장군 77주기였다. 대한민국 상공에 특별기가 들어서자 공군 전투기 6대가 이를 호위한다. 정말 뜨거운 장면이었다.
2023년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육사에서 홍범도 흉상을 이전한다고 발표했다. 육사 스스로가 세운 흉상을 대통령이 이념을 논하자 행동이 옮겼다. 게다가 정부나 여당 그리고 극우인사들이 이념 논쟁이 불을 지폈다. 논리적으로도 빈약하고 역사학자들에게 조언을 구한 것 같지도 않다. 마치 이슈를 이슈로 덮을 것처럼 이슈 쓰나미가 몰려온다. 홍범도 장군이 버젓이 살아 있는데도 죽었다고 대서특필하던 일본군의 마음과 같은 것일까?
홍범도 장군이 독립 운동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사실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참에 장군에 대해 조금 더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책을 구입하여 읽었다. 정치권에서 논란을 일으켜 준 덕분에 이 책은 4쇄를 찍었다고 한다.
홍범도 장군의 일대기를 엮은 홍범도는 10권에 달한다. 이동순 시인은 문체를 다듬고 추려 이 책을 펴내었다. 줄였다고 하지만 800쪽에 달한다. 그만큼 장군의 활동이 대단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태어나면서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 또한 어린 나이에 잃은 고아였던 장군이 이렇게 훌륭한 삶을 살았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리고 장군이 싸워왔던 전투를 보면 마치 이순신 장군이 환생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장군의 전략과 대담함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백전백승에 가까운 그의 업적을 떼어 놓고 봐도 그는 훌륭했다. 일제에 탄압받는 동포를 보면 참지 못했고 독립군 한 명 한 명을 소중히 했다. 대단한 승리에서도 죽어간 동지를 위해 눈물 흘릴 줄 아는 대장이었고 가족이라고 특별하게 대하지 않았다. 그런 아버지를 닮은 아들도 기꺼이 독립군에서 활동했고 아내는 일본군에게 잡혀가 고초를 겪다 순국했다. 지아비의 큰 뜻에 걸림돌이 되지 않고자 했던 대단한 여인이었다. 그런 아내를 장군은 무척이나 아꼈지만 독립운동을 하느라 알콩달콩한 생활을 하지 못한 것을 늘 미안해했던 것 같다.
이 책은 홍범도 장군의 일대기를 담았지만 어떻게 보면 우리 독립운동의 역사를 보는 듯했다. 교과서에서나 보던 상해 임시 정부의 얘기가 아닌 만주, 연해주에서 일본군과 직접 교전한 우리 항쟁의 역사를 담았다. 그 속에는 빛나는 승전의 기록도 있지만 간도 대학살이나 자유시 참변과 같은 아픈 역사도 담겨 있다.
어릴 적 누군가 우리 국민을 비판할 때 꼭 '모래'에 비유했다. 개개인의 능력은 좋은데 좀처럼 뭉쳐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홍범도 장군은 하나가 되어 진정한 적인 일본과 싸우자고 핏대 세우며 강조했지만 자기 권력에 취한 많은 독립군 지도자들은 부패해 있었다. 고비 때마다 '돈' 때문에 더욱 힘들었다. 민족 독립을 위해 싸우는 이들도 '돈'의 유혹에 쉽게 변절되기도 했다.
세월이 꽤나 지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모래알 같다. 국가적인 사안에 대해서도 정치적으로 갈라진다. 진정한 적이, 진정한 문제가 무엇인지가 중요하지 않다. 그냥 내 생각과 반대되는 자가 적일 뿐이다. 내부적으로 싸우는 동안 적은 유유히 자기 챙길 것 챙겨 사라진다. 우둔한 지도자들의 권력 싸움과 뭐가 다른가. 목숨을 내놓고 독립 운동 하던 선열들이 슬퍼할 듯하다.
홍범도 장군은 고려인 사이에서도 정신적인 지주다. 그런 장군의 유해를 대한민국으로 보내는 것에는 그들의 힘든 결단도 있었을 것이다. 이제와 무슨 이유로 독립 선열을 하대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장군을 포함한 고려인 전체를 무시하는 것이다.
21세기에 이념 논쟁이 그렇게 중요할까.
BBC에서 조사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에 '카를 마르크스'가 뽑혔다. 마르크스는 <자본론>, <공산당 선언>으로 유명하다. 모두가 잘 사는 유토피아를 꿈꿨으나 결국엔 실패했다. 하지만 그의 실험은 자본주의가 날뛰는 세상에 복지라는 완충제를 만들어 주었다. 우리가 가장 부러워하는 북유럽 국가는 '사회 민주주의'라 할 수 있다. 지금의 시대에 이념이 그렇게 중요할까? 국민이 행복하게 사는 게 더 중요한 게 아닐까?
북한 공산당은 일본 공산당 하고 분명 다르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다. 그렇다면 일제에 쫓겨 밀려날 수밖에 없었던, 후일을 도모하려 레닌의 공산당의 지원을 받고자 했던 홍범도 장군이 북한 공산당과 다르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하다. 민족의 일을 해결하는데 다른 나라의 힘을 빌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나라를 구하겠다고 다짐했던 이에게 존경을 보내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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