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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크인 이야기 (이희철) - 리수

야곰야곰+책벌레 2023. 8. 21.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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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단한 제국의 역사를 이루고도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했던 오스만 제국. 서양에서는 '야만인'으로 동양에서는 '오랑캐'로 불렸다. 하지만 그들은 중국도 서양도 함부로 할 수 없을 정도의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역사를 더듬어 보는 것은 끊어진 역사의 사슬을 이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아닐까? 

  유목민 국가는 정주 국가와  다르게 역사를 기록하지 않아 그 기록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 종교를 받아들이고 정주를 시작한 위구르 부족에 들어서야 그 기록이 조금씩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오랑캐라고 불렸던 이 유목민족에 밀린 중국 땅 위의 나라들은 치욕을 역사를 제대로 기록해 두지도 않았다.

  몽골반점, 복합궁, 편두, 동북 등의 여러 근거를 들어 대륙을 건너 동로마를 무너트린 튀르크인이 한국인일지라도 모른다는 가설은 튀르키예가 정치적 형제의 나라가 아니라 피로 이어진 형제의 나라일지도 모르겠다는 호기심이 발동하게 된다.

  흉노와 돌궐 제국을 이뤘던 튀르크 인들은 유목민답게 호전적이고 말이 풍부했고 잘 다뤘다. 이 나라들은 중국 대륙의 국가들을 끊임없이 괴롭혔고 때론 역공을 받기도 했지만 그들의 '자아'는 그대로 간직했다. 대륙을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던 그들은 어느새 동쪽이 아닌 서양을 향하고 있었다. 그들의 대이동은 게르만족을 밀어냈고 결국 동로마의 멸망으로 이어졌다. 

  유목을 하던 튀르크는 위구르 제국을 세우고 마니교를 받아들이며 정주 국가를 시작하게 된다. 그들의 역사는 점차 서쪽으로 향하고 무함마트가 일으킨 이슬람교를 받아들이며 셀주크 제국을 세우게 된다. 튀르크의 천신사상과 이슬람의 유일신은 서로 통하는 면이 있었다. 이슬람의 성전은 전사정신과 그리고 법과 도덕은 퇴레와 닮아 있었다. 무함마트에게는 아들이 없었기에 원로들의 합의에 따라 후계자라는 뜻을 가진 '칼리프'를 선출했다. 하지만 4대 칼리프에서 문제가 생겼다. 무함마트의 사촌인 알리가 칼리프가 됨에 따라 혈연을 중시하는 시아파와 능력을 중시하는 수니파가 나뉘게 되었다.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된 것이다.

  셀주크 제국은 군사력을 키워 나갔다. 십자군, 비잔틴 제국과의 전쟁을 거치면서 대제국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 뒤로 600년의 오스만 제국이 이어지게 되었다. 셀주크 제국의 멸망을 가져왔던 몽골과의 전쟁은 오스만 제국 때에도 이어졌는데 몽골이 없었다면 콘스탄티노플은 메흐메트 시대에 점령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제국의 흥망성쇠는 서로 닮아 있고 튀르크의 역사인 흉노, 돌궐, 위구르, 셀주크처럼 오스만도 그렇게 저물어 갔다. 세계의 지배자라고 불린 슐레이만 술탄의 시대를 지나 급격히 쇄락했다. 약해진 호랑이는 주위에서 가만 두질 않는다. 서양 열강들은 오스만을 끊임없이 괴롭혔고 내정에 밝지 못한 관료들의 잘못된 판단은 그것을 가속화시켰다.

  아프리카처럼 프랑스, 영국 등의 나라가 오스만의 땅을 노렸지만 독립을 외치던 이들의 노력 끝에 자치국가를 인정받았다. 어떻게 마지막까지 우리와 비슷할까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오스만 제국의 이야기는 그간 읽은 책으로 조금 알게 되었는데, 흉노부터 이어지는 이야기는 또 다른 재미를 주어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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