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만 600년 역사 중에 가장 강한 군주를 뽑자면 개인적으로는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하며 정복자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는 메흐메트 2세다. 그는 카이사르와 칼리파 칭호를 동시에 사용했으며 서양의 문물에도 관심이 많았기에 다민족, 다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오스만 제국의 든든한 바탕을 만든 인물이다.
메흐메트는 아들 바지예드 2세는 전쟁에 대한 욕심보다 정권 안정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다. 배척했던 젬 왕자와 서양에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그는 내치를 강하게 했다. 함대를 구축하고 베네치아의 영토를 휩쓸었다. 더불어 유럽 정세에도 관여를 하게 된다. 일개공국이었던 오스만은 유럽의 세력 균형을 좌우하는 핵심적은 국가가 된다.
냉혈한으로 유명한 셀림 1세는 8년이라는 짧은 재위 기간이었지만 그 업적은 그렇게 가볍지 않다. 그는 그 짧은 기간 동안 시리아, 이집트를 정복하고 페르시아를 무찔렀다. 자신의 아버지를 포함하여 모든 정적을 제거한다. 그리고 사이파 왕족의 샤 이스마일을 대파하고 맘루크 제국의 운명을 끝내버린다. 오스만의 모든 전략적, 경제적 요지를 확보한다.
성향은 다르지만 두 명의 걸출한 술탄을 앞에 둔 술레이만은 오스만 제국의 정점을 찍게 된다. 그는 술탄 중의 술탄이며 세계의 왕을 노린 술탄이었다.
셀림의 공포의 시기가 지나간 뒤 술레이만은 관용책을 펼친다. 감금된 상인과 명사를 석방시키고 이란과의 교역을 자유롭게 했다. 군주에게 필요한 것은 국민이고 그로부터 돈과 권력과 병사가 나옴을 술탄들은 잘 알고 있었다. 정의롭게 행동하고 나라를 제대로 다스릴 의무가 술탄에게는 있었고 술레이만은 독실한 신자이기도 했다.
이슬람교의 주된 교리는 "살아있는 것은 모두 사라진다"라는 것으로 신만이 유일할 수 있고 인간이야 그저 지나가는 객에 불과하다. 그래서 이슬람교에서 장례식은 굉장히 단출하며 살아 있을 때의 호의호식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이스탄불에는 로마와 같은 화려한 건축물이나 미술물이 없다는 것이 그것을 반증한다. 인물화는 사실대로 그려야 했고 미화시키지 않았다. 뚱뚱한 술탄은 뚱뚱하게 그렸다. 미화될 수 있는 건 오직 신이다는 것이다.
술레이만은 "천운의 주인"이라는 강한 자의식이 있었는데 이는 토성과 금성이 일직선이 되어 합을 이룰 때 태어난 인물로 아주 특별한 행운을 타고난 사람으로 여겨졌다. 강한 자신감은 여러 민족을 포용하는 결단을 내리는 것으로 여겨졌는지도 모르겠다. "세계의 왕"이라는 것은 보편타당한 왕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도교나 타민족에 대해서도 두 가지만 지킬 것을 요구했다. 첫째로 세금을 제때 납부할 것, 둘째로 평화를 깨지 말 것. 오스만 정부를 따르고 이슬람을 존중하는 의무만 지키면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었다. 실제로 이스탄불에서는 기독교와 이교도가 섞인 축제들이 매년 여러 차례 열리기도 했다. 그런 걸 보면 오스만이 유럽을 장악하는 편이 훨씬 나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무한에 가까운 수입과 자원으로 오스만 제국은 압도적은 우위를 가지고 있었다. 선박 또한 순식간에 만들어낼 수 있었다. 되려 선박을 움직일 사람이 모자를 정도였다. 그랬기에 유럽의 두려움은 눈에 선하다.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는 오스만과 친교를 맺었고 이탈리아의 카를 5세는 으르렁 거렸다.
부자도 3세 가기가 어렵다고 했던가. 슐레이만 시대의 또 하나의 권력이 바로 '록셀란'이다. 특유의 쾌활한 기질 때문에 '유쾌한 여자'라는 뜻의 '휘렘'이라 불렸다. 영리하고 교활했던 여자는 자신의 매력과 능력을 이용하여 술탄의 애정을 독차지했다. 술탄에게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소개되기라도 하면 극성을 부려 술탄이 이들을 돌려보내게 했을 지경이었다. 어떻게 보면 술레이만 시대는 휘렘의 시대라고 할 수도 있다. 세상은 남자가 호령해도 그 남자는 여자가 지배한다는 말이 참 어울린다. 남자들의 천국으로 회자되는 '하렘'이라는 것이 단순한 유흥을 위한 곳이 아니며 그곳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조선의 대비마마처럼 하렘 최고 지위 '카딘'의 경우에도 술탄 못지않은 권력의 중심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유럽이 두려워했던 술레이만의 첫 번째 아들 '무스타파'는 바로 록셀란에 의해 제거되었다. 하지만 록셀란이 죽고 나서 그녀의 아들 바예지드와 셀림은 왕좌를 두고 싸우게 된다. 하늘도 무심하게 방탕하고 능력 없는 셀림 2세가 바예지드를 제거하고 왕위에 오른다. 주위 국가에서 안심할 정도라니 이 왕의 한심함은 충분히 알 수 있다.
술레이만의 솔 메이트인 이브라힘도 피살되며 술레이만은 아마 정신적으로 기댈 곳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누구를 탓하기 이전에 모든 것이 술레이만 자신의 선택이었기에 그것만은 자신이 짊어지고 가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술레이만 이후 대세는 급격히 기운다 그럼에도 오스만 300년을 더 버텼다. 유럽 또한 상황이 그렇게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스만은 근대화에 실패했고 유럽에서 일어난 산업혁명과 아메리카에서 들어온 은화 때문에 생긴 가격 혁명에 적응하지 못했다. 오스만이 유럽이라는 작은 땅에 목매지 않고 인도나 중국을 향했다면 어땠을까? 영국이나 포르투갈이 차지하려고 했던 인도의 자원을 독점했다면 어땠을까. 술레이만은 칭기즈 칸을 넘는 정복 왕이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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