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다. 무척이나. 인류의 자취를 진화적으로 본 책도 있고 지리학적으로 설명한 책도 있었다. 이 책은 인간 본성 혹은 사회적으로 분석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역사학적일 수도 있고 정치학적일 수도 있고 철학적일 수도 있다.
좌우를 가리지 않고 아닌 건 아니라고 논쟁을 벌이든 세계적인 논객 어니스트 겔너의 작품이다. 그는 칼 포퍼와 더불어 유명했지만 학파를 만들었지 않았기 때문에 대중에겐 오히려 덜 알려져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민족과 민족주의>에서 그는 민족주의가 전통사회로부터 출발한 것이 아닌 근대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저자는 인류 역사의 진행 방향을 유전자가 아닌 문화의 관점에서 봤다. 그리고 그 동력은 바로 '생산, 억압,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결은 완전히 다른 것 같지만 이 책 역시 문화의 흐름이라는 것이 어쩌면 숙명적인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겔너 역시 도킨스가 유전자의 숙명론을 벗어나기 위한 '밈'처럼 인간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진 건지도 모르겠다. 역사는 계속되고 있으니까.
인류가 어떻게 지능을 가지고 문화와 언어를 가지게 되었는지는 명확하게 알 수 없다. 하지만 인류는 수렵 채집을 하면서도 공동체를 이뤘다. 생산이라기보다는 채집에 가까운 생활에서는 자연의 변화에 관심을 기울였다. 어쩌면 '인식'의 시작이었다. 그 와중에 주술사라는 개념이 만들어졌을 것이고 그들의 토템은 그런 작은 기능을 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토템은 인식이며 인식과 개념을 만드는 자가 권력을 가진 자라고 할 수 있다.
인류는 어떻게 농경을 시작했다. 농경은 생산의 시작이다. 농경은 인류에게 잉여 생산을 가능하게 했다. 그리고 저장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생겨났다. 잉여 생산은 생산보다 약탈이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만들어냈다. 쟁기 대신에 칼을 든 사람들이 나타났다. 생산자가 죽지 않을 만큼 약탈했다. 그리고 그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죽지 않을 만큼 거둬 갔다. 맬서스 시대의 생산과 약탈은 목숨을 담보로 하고 있기에 강력했다. '억압'은 그 기능이 명확했다. 하지만 반대로 사회에서 완전히 분리되어 고립되어 수행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바로 종교다. 그들 자체는 강력한 권력이 없었지만 그 자체로 '권력'을 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었다. 사람들은 아무것도 통하지 않을 것 같은 '신' 보다는 불완전한 '신'의 대리인이라고 불리는 자에게 아부하기 시작했다.
산업화는 생산의 폭발적인 성장을 만들어줬다. 이제 생산은 약탈로 뺏겨도 큰 타격이 없을 만큼 성장했다. 권력은 약탈보다 생산자를 북돋는 편이 더 많은 부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생산은 그렇게 다시 권력의 키를 가져온다. '부'라는 키워드는 이제 권력에 가깝게 된다. 부로 권력을 살 수 있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직업의 귀천은 희미해지고 '부'는 새로운 계층을 형성한다.
하지만 권력자가 부를 더 많이 취할 수 있는 사회 구조는 새로운 반발을 만들어 냈다. 한쪽에서는 자본주의가 한쪽에서는 사회주의가 생겨났다. 하지만 사회가 자유로워졌다고는 할 수 있지만 억압이라는 키워드는 사라지지 않는다. 흄이 말했듯 리바이어던은 사회를 존재하게 하는 강한 구심점이다. 조세프-마리 드 메스트르가 말했듯, 사행 집행인은 사회질서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사회는 선제적 갈등 고조를 억제하는 메커니즘을 가지는 사람들의 집단이다. 정치체제는 갈등의 고조를 피하는 것이 유리하는 생각으로 여러 상황을 억누른다. 절대자가 없는 사회에서 '인식'은 새로운 곳으로 향한다. 인류는 왕이나 성직자 대신 '문화'에 충성하게 된다. 바로 민족주의다.
사회는 여전히 억압적이고 고대에 비해 평등하지만 여전히 불평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런 불평등을 쉽게 받아들이는 것은 불평등이라는 것이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권력자는 대중의 무서움에서 안도할 수 있고 대중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회의 상호 의존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순응하게 된다. '더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자는 위협은 사람들을 순응하게 만드는 것이다. 다수는 이미 처벌받은 소수와 똑같은 운명을 겪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걸려드는 것이다.
오늘날 가장 중요한 것은 '억압'이다. 이는 곧 정치의 영역이다. 정치는 어떤 경우에도 소멸하지도 추락하지도 않는다. 새롭게 태어난 이 육중하고 풍요로운 경제는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점에서 국가의 존재 이유는 사라지지 않는다. 아무리 탈중앙화를 외쳐도 순식간에 잠재울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가가 어떻게 조직되고 어떻게 감시되어야 하는지가 문제다. 그리고 정치는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권력자와 대중의 시소 같은 게 아닐까 싶다. 시민은 그래서 정치적이어야 한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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