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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글이 만든 세계 (마틴 푸그너) - 까치

야곰야곰+책벌레 2024. 5. 16.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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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자는 인류의 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한 발명품이라고 할 수 있다. 말이 문자가 되면서 지식은 보다 널리 오래 지속될 수 있었다. 소실되던 지식은 사라지고 점점 쌓여 지금의 인류를 만들었다. 글은 인간에게 진화의 속도를 넘어 진화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문자가 만들어낸 글은 생물과 다르지 않다. '밈'이라는 책을 보면 문명, 지식이라는 거 자체도 적자생존 속에 있다. 많이 쓰이는 것들이 득세하고 남는다. 

  인류를 이끌었던 때론 영감을 주고 때론 숭배하기도 했던 텍스트에 대한 얘기는 까치글방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유물이 인간의 삶을 얘기한다면 글은 인간의 생각을 담고 있다. 세월의 풍파 속에서 이미 소실된 많은 문자들 속에 운 좋게 지금에 이르게 된 것들이 있다. 그리고 그 글들은 누군가의 노력으로 그 끈질김으로 현대까지 전달되었다. 재난은 전화위복이 되기도 했고 핍박받을 때에는 말로 이어져 왔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하나씩 만나고 있다.

  모든 이야기의 시작은 <길가메시 서사시>다. 인간을 신에 가깝게 묘사하는 글은 정치적으로도 중요했을 것 같다. 신을 숭배하던 인간은 스스로 신이 되고자 했으니 그것은 바벨탑을 지은 인간을 모습뿐 아니라 신의 계시를 받았다던지 신의 아들이라든지의 신화 속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알렉산드로 대왕을 이끌었던 <호메로스>는 지금도 많이 읽히는 책 중에 하나다. 그리고 그런 서사의 이야기는 서로가 영향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인간 문명에서는 비슷한 형태로 나타났다.

  부처, 예수 그리고 공자, 소크라테스 그들은 글보다는 말을 좋아했다. 그렇다고 글을 모르지는 않았을 거다. 아마 고정된 형태의 뭔가로 남는다는 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일까. 그들은 굳이 글을 남기려 하지 않았다. 대화 속에서 깨달음이 있었을 거다. 하지만 그들을 추종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글로 남겼다. 스승의 유지를 존중하여 대화 그대로를 남기려는 시도도 많았다. 경전은 인간에게 신성함을 받은 텍스트가 되었다.

  문자는 대부분 회계에 쓰였으나 점차 그 영역을 넓혀 나갔다. 신화와 종교의 설파를 이용되었다. 권력이 강한 사람들의 전유물이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글을 쓸 수 있는 재료들이 희귀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종이 발명은 그런 면에서 문명의 발전에 중요한 지점이다. 종이를 좀 더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것은 글을 좀 더 자유롭게 남길 수 있는 이유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경건하고 무거웠던 글 속에서 이야기는 자기 영역을 만들어 갔다. 무라사키의 <겐지이야기>나 셰에라자드의 <천일야화>는 글이 새로운 영역을 들어섰음을 알렸다. 게다가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대중화시키자 글은 엄청난 속도로 퍼져 나갔다. 물론 그 속에 좋은 점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텍스트의 힘은 점차 커져갔다.

  목차를 읽으며 그저 특정 텍스트의 분석을 한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읽다 보니 글이라는 것의 서사에 대한 내용이었다. 예를 든 글에 대한 이해도 되었지만 글이라는 것이 인류사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런 느낌은 10장까지 이어진다. 10장이 넘어서면 문학 그 자체에 대한 얘기로 원래 생각했던 형식을 취하게 된다. 이쯤 되면 글은 그 자체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이 속에 존재하던 글은 이제 전기신호의 의해 저장되고 읽히고 있다. 어떻게 보면 '전기적 서판'이라고 해야 할까. 누구나 새기고 싶은 말을 새길 수 있고 아무나 그 글을 발견할 수 있다. 순식간에 지구 전역으로 전달된다. 이 새로운 세상에서 이야기는 또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지 궁금해진다.

  인류를 이끌었던 주류 텍스트에 대한 이야기. 그들이 힘을 가진 배경과 인간의 발전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책이었다. 이야기 그 자체도 즐겁지만 그 이야기 사이를 이어가는 방법도 즐거운 일이다. 꽤나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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