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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렁이의 불행한 삶에 대한 짧은 연구 (노에미 볼라) - 단추

야곰야곰+책벌레 2024. 4. 15.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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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예지를 넘기다가 손을 멈췄다. 너무나 기가 막힌 제목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지렁이의 불행한 삶에 대한 짧은 연구' 이런 책을 찾아내는 건 책을 읽는 사람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이다. 어떤 내용인지도 모르겠지만 제목이 벌써 나를 두근거리게 한다. 이런 B급 감성을 사랑한다.

  급히 검색을 하여 장바구니에 담으니 가격은 3만 8천 원 (만만치 않다)이다. 벽돌인가?라고 스크롤을 내려 보니 300 페이지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왜!'라고 내적 함성을 지르고 있는데 눈에 들어왔다. 

'유아(0 ~ 7세)'

  이 책은 동화책이다. 300페이지 가까운 삽화가 들어 있는 동화책이다. 20 ~ 30페이지 남짓의 동화가 만 원을 넘는 건 이제 인지상정이다. 그럼 이 책의 가격은 지극히 합리적이다.

  그래도 비싼 책이고 알 수 없기도 했고 더군다나 유아 책이다. 너무 가지고 싶은데 내적 갈등이 심해진다. 그러던 찰나 아들이 교보문고를 가자고 한다. 그것도 시내에 있는 큰 교보문고에 가고 싶단다. 30여 분을 운전해서 아들을 어린이 책들이 있는 곳에 풀어놓고 '지렁이'를 찾으러 갔다. 동화책이기 때문에 같은 층에 있으리라. 검색을 하니 딱 한 권 남았다.

  아무리 제목에 끌려 사는 편이지만 이 책은 내용을 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누가 채갈까 봐 급히 도서를 찾으러 나섰다. 책장들 사이에 분홍색 책이 한 권 끼여 있다. '지렁이'다. 책을 딱 잡는 순간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비닐 포장이 되어 있었다.

  내용을 확인한다는 건 포기했다. 덕분에 이번에도 십만 원이 넘는 영수증을 받고야 말았다.

  이 책은 지렁이를 관찰하는 독특한 취미를 가진 작가가 애정을 가지고 쓴 책이다. 처음에는 아이들과 시시덕거리며 볼 수 있는 지렁이 그림이 잔뜩 있다. 개인적으로 지렁이를 싫어하지 않는 나는 작가의 취미에 괜히 웃음이 났다. 지렁이 종류도 엄청 많다는 것도 알았다. 귀엽고 즐거운 책인 줄만 알았다.

  후반부로 갈수록 어른을 위한 동화 같다는 느낌이 계속 들었다. 

  그냥 멍하니 봐도 좋다. 지렁이과 작가의 엉뚱함이 귀엽다. 그러다가 평생 땅만 파는 지렁이에 자신이 투영된다. 그렇다고 뭐 하나 불평하지 않는 지렁이다. 맑은 날 밖에 나가면 말라죽고 비가 오면 빠져 죽지 않으려고 땅 위로 나가야 한다. 그렇다고 매미처럼 평생 한 번이라도 날아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비처럼 예쁘게 변하지도 않는다.

  돌멩이 보다도 불행해 보이는 지렁이. 그럼에도 고집스레 땅을 파는 지렁이... 그 속에 우리 삶이 묻어 있다. 작가가 지렁이에 마음을 투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섯 면이 모두 분홍색인 책이다. 제목은 너무 마음에 들고 내용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힐링 서적을 찾고 있다고? 생각 없이 페이지를 슥슥 넘기고 싶다면 이 책 개인적으로 추천한다. (좀 비싼 것이 부담스럽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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