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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아버지의 4차원 영재교육 (현용수) - 쉐마

야곰야곰+책벌레 2023. 1. 16.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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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에 있어 아버지의 역할은 작지 않다고 생각한다. 산업화되는 동안 가정도 분업화가 이뤄지고 남편은 일을 하고 아내는 집안일을 돌보는 것이 보통의 것이었다. 아이는 엄마로부터 태어나기 때문에 강을 거슬러 오르는 귀소본능으로 어머니에게 향하는 것은 본능일지도 모른다. 밖에서 일만 하던 아버지는 어느새 외톨이가 된다. 아이들은 부엌을 중심으로 모이기 때문이다.

  호주제가 아직 있던 시절에 한 외국인의 블로그가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아이의 엄마는 일을 하고 아이는 아빠가 돌보며 블로그에 포스팅을 했다. 그 아빠의 말은 어릴 때 아버지와 가까워져 있어야 나이가 들어서 엄마랑 균형을 맞출 수 있다고 했다. 독립을 위해 점점 더 멀어져야 하는 아이와의 거리를 유지하려면 어릴 때 아주 가까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 책은 그런 멋진 얘기와는 거리가 있다. 2015년에 발간된 책 치고도 꽤나 시대착오적인 느낌도 있다. 물론 저자가 얘기하는 권위에 관한 주장을 동의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매를 들어야 한다던지 아버지가 결정해야 한다던지의 문제는 생각의 결이 달랐다. 그리고 종교적인 색채가 너무 진해서 거부감이 드는 것도 사실 존재했다. 내가 아는 종교 상의 '복종'은 인생의 삼라만상이 절대자의 의지라면 나에게 닥친 고통에 대해서도 복종하라는 현실 인정의 의미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복종'을 특정인으로 지정했고, 아버지는 제사장으로써 복종을 쟁취할 권리가 있는 것처럼 얘기했다. 이런 식의 메시아에 대한 복종은 수많은 이단을 낳지 않았던가. 

  보통의 유대인이 쓴 책은 이렇지 않았다. 그들이 모든 것을 내어 보이지 않은 것인가. 저자가 수직적 관계를 너무 강조한 것일까. 그럼에도 타 종교에 대한 랍비의 생각을 다룬 부분은 좋았다.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가지요. 믿지 않는다면 다른 천국에 있겠지요." 사실 그런 포용심을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종교 얘길 먼저 한 것은 그만큼 색채가 진하기 때문이다. 무교인 내가 읽으려면 색채에 무덤덤해질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부분들을 들어내고 들여다보면 꽤 괜찮은 얘기가 많다. 특이 아버지라는 권위와 의무 그리고 왜 그렇게 할 수 없냐에 대한 얘기가 공감이 갔다.

  아버지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이유는 첫 번째로는 이상적인 아버지의 역할 모델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며 두 번째로는 아버지에 대한 역할에 대한 최소한의 교육도 받지 못해서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의 차이는 차별과는 다르다. 이것은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우월한 것도 아니다. 아버지에게 권리가 있다면 의무도 있다. 남편은 아내를 위해 자신의 목숨도 내어놓기를 주저하지 않을 정도로 사랑해야 한다. 아버지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권리만 주장하고 아내와 자녀에 대한 의무를 소홀히 하기 때문이다. 남편 노릇하기는 정말 힘들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아버지는 권위가 있어야 한다. 권위는 자연스러운 존경의 의미다. 그리고 존경은 자연스레 그를 따르게 한다. 아버지는 아이의 롤모델이 될 수 있을 만큼 반듯해야 한다. 아이는 어른과 함께 앉아 대화와 토론에 참여하면서 인간관계의 기본을 배워야 한다. "누구든 만나게 되는 사람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이다"라는 탈무드의 교훈을 이해해야 한다. 아이가 잘 자라려면 좋은 어른과 대화해야 한다. 사려 깊고 좋은 언어를 구사하는 어른과의 대화는 자연스레 어휘의 확장과 생각의 깊이를 늘려 줄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느 수단은 크게 말과 글쓰기로 나눌 수 있다. 글은 인간 기억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도구이다. 독서는 타인의 기억에 대한 접근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말과 글은 리더의 중요한 자질이기도 하다. 편집되고 직관적인 영상은 생각의 폭을 좁히고 게으르게 한다. 유대인들이 영상 교육을 피하는 이유다. 신기술의 선두에 서 있다는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의 집에는 책만 가득하다는 것은 우리가 공공연히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우리 교육과 유대인의 교육의 차이는 무엇일까? 미국의 어느 교수가 한국인 학생을 표현하기로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이라 했다. 암기만 잘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손 안에서 언제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달달 외우는 공부는 이제 의미가 없다. 우리는 컴퓨터를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유대인은 '남을 이겨라'라고 교육하지 않는다. 그저 '남과 다른 사람이 돼라'라고 가르친다. 혁신적인 리더가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 외국인들이 화두를 던지면 아시아인들이 죽어라 만든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도는 되놈이 버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기술이 아니냐며 자위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버지가 교육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것은 또 다른 인간과의 교감이기 때문이다. 대화를 나누고 사유하는 것은 책과도 어머니와도 친구와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곳에 아버지라는 또 다른 새로움을 더해준다면 분명 아이는 더 다양한 색으로 빛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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